레몬 디톡스
친정엄마가 한국서 나의 결혼사진을 들고 오셨다. 20여 년 전 것인데도 배경을 뿌옇게 처리해서 인지 인물이 뽀샤시 돋보인다. 자기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많이 벗겨진 남편과 중년 이후 몸이 불어 두루뭉술해진 나를 사진 속 인물과 연결하기 힘든지 집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꼭 한다. “왜 이리 망가졌어?” “예뻤네, 살 좀 빼” “탤런트 배종옥 닮았었네” “남자 집사님 하이모 하나 해드려”
이민1세로 생활기반 잡느라 바삐 살다보니 외모를 가꿀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면 미국 온지 14년이나 지난 지금 핑계밖에 안되리라. 선천적으로 움직이기 싫어하고 맛있는 음식을 유난히 밝히는 나의 탓이다. 이제는 외모보다 건강상의 이유로 체중을 줄여야 함을 익히 아는 바이나 실천은 어렵다. 스트레스 받으면 식사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만사 젖혀놓고 우선 밥부터 먹으니 평생 살이 빠져본 적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밥을 굶어 본 기억을 가까스로 더듬어 보니, 중 고등학교 때 체력검사를 앞두고 한두 끼가 고작으로 밥 한 끼 먹으면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했다.
정기검진에서 당뇨 위험 군이니 체중을 10파운드 줄이라는 의사의 권고를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는 라인댄스와 주말을 이용한 가끔의 산행은 식욕만 좋게 할 뿐 체중감량의 효과는 하나도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기에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레몬 디톡스’를 발견하였다. ‘마스터 클린즈’라고도 불리는 레몬 디톡스 요법은 짧게는 3일 부터, 일~이주동안 식사를 전혀 하지 않고 레몬 물에 메이플 시럽, 카이엔 페퍼를 타서 수시로 마시는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와 데미무어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했다고 유명세를 탔으며 체중감량 효과 외에도 몸 속 노폐물과 독소를 빼주어 만성피로를 없애준다고 되어 있다. 일부러 주위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서 슬그머니 그만두는 일이 없게끔 하였다. 어지럽거나 속이 쓰려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면 어쩌나 한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며 몸도 가벼워짐을 느꼈다. 삼일짜리 단기 코스에는 가끔 도전을 해야지 하고 마음 먹게 되었다. 무엇보다 밥심으로 살았던 내가 밥을 여러 끼 굶었다는 것에 스스로 대견하고 턱 선이 갸름해졌다는 격려도 들으니 기뻤다.
100미터 달리기 하듯 숨 가쁘게 집안 살림과 가게 일을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 없이 지내왔다. 디톡스로 빼내야할 노폐물이 어찌 몸에만 있으랴 싶다. 마음속에 앙금같이 가라앉아 있을 시기와 질투, 아집, 분노를 디톡스로 없애버리고 대신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채우고 싶다. 새해에는 한국 나이로 50세가 된다. 어느새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많게 되었다. 살아온 시기만큼 때 묻고 얼룩졌을 나를 이불 호청 뜯어 빨아 풀을 먹이듯 새로운 나 자신으로 거듭나고 싶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평범한 말이 생각난다. 며칠간의 레몬 디톡스가 어느 정도 ‘새로운 나 ‘만들기에 일조했길 바란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짧은 시가 인생의 후반전은 새로운 내가 되어 더욱 열심히 살아보라는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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