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으로 간 고등어
서울에 머무는 동안, 친구의 안내로 점심을 먹으러 판교 근처까지 나섰다.
목적지는 ‘산으로 간 고등어’라는 식당이었다.
이름의 연유를 묻자 산나물과 간고등어의 만남을 뜻한다고 했다.
식당에 도착해 보니 넓은 주차장이 있음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붐비고 있었다.
그냥 돌아설까 하다가 급히 차에서 내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기실로 들어서니 우리 앞에만 오십 팀이 넘게 줄을 서 있었다.
자리에 앉아 순번을 기다리는 사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마침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피자를 굽는 듯한 커다란 화덕 두 개가 식당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고,
두 사람이 쉬지 않고 고등어를 굽고 있었다.
불길 위에서 고등어가 뒤집힐 때마다 고소한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잠시 후 기본 반찬이 차려졌다.
필요하면 더덕무침과 연뿌리무침,
시원한 된장국까지 셀프 바에서 무제한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화덕에서 갓 구워낸 고등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젓가락으로 살을 가르자 하얀 김이 조용히 피어올랐다.
고등어 한 점을 맛본 아내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한식은 처음이야.”
식사가 끝난 뒤에도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늘 한식을 먹고 살아왔다.
밥과 된장, 김치는 언제나 식탁의 중심이었다.
내게 한식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고,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다.
반면 아내는 서울에서 자라며 결혼 전까지 빵이나 피자 같은 음식에 더 익숙한 편이었다.
결혼 후 같은 식탁에 마주 앉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내는 천천히 한식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시골’이었다.
아내에게는 어린 시절 돌아갈 시골이 없었다.
방학이 되면 친구들이 늘어놓던 시골 이야기가 늘 부러웠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내에게도 시골이 생겼다.
바로 내가 태어난 두메산골이었다.
그곳에는 늘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머니가 계셨다.
시골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손수 밥상을 차려주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와 직접 담근 김치, 산나물….
투박하지만 손맛이 깊이 밴 음식들이었다.
처음 마주한 시골 밥상 앞에서 아내는 금세 마음을 열었다.
“맛있어요”를 연거푸 말하며 내놓는 음식마다 감탄을 보탰고,
그런 며느리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아내는 시골 음식의 맛을, 그리고 그 정서를 몸으로 익혀갔다.
그날 판교의 식당에서 먹은 고등어 한 끼는 단순한 점심 그 이상이었다.
화덕에서 구워진 고등어 한 마리가 우리를 오래된 기억 속으로 데려갔다.
시골 마루에 둘러앉아 먹던 밥상, 정성으로 차려진 음식들,
그리고 그 맛을 함께 알아가던 아내와 어머니의 시간이 겹겹이 떠올랐다.
고등어를 다 먹고 나서도, 마음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산을 넘어, 시골의 기억까지 데려온 고등어를 먹고 있었다.


정말 맛갈스런 글입니다. 산나물과 간고등어의 조합이라니...
한국에 가면 판교에 있는 이 식당을 가보고 싶네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먹으면서 쌓는 기억은 특별하지요.
맛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