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헌팅턴비치 마라톤
지난해 4월의 일이다.
아침 달리기 모임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들은 소식이었다.
내년 헌팅턴비치 마라톤이 열리는데, 일찍 등록하면 참가비가 할인된다는 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과 통화를 하며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뜻밖에도 아들은 이미 등록을 마쳤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
태중에 있던 아이가 태어나면,
혹시 손녀와 함께 그 자리에 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스쳤다.
아내를 설득했고, 결국 우리는 하프코스에 나란히 등록을 마쳤다.
대회까지는 아직 열 달이나 남아 있었다.
하프 마라톤 정도라면 무리하지 않고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손녀와 함께’라는 상상이 먼저 앞섰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마라톤이라는 이름 하나에 이끌려 시간을 예약해 두었다.
하지만 시간은 약속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2026년을 맞아 한 달 내내 한국과 인도를 오가는 일정이 이어지면서 몸은 쉽게 지쳤고,
훈련에 쓸 여유도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태어난 지 채 여섯 달이 되지 않은 손녀는 긴 시간을
야외에서 보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내는 “속은 것 같다”며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했다.
그 앞에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2월 1일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다섯 시에 집을 나섰다.
바깥 공기는 생각보다 포근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음악, 분주한 움직임이 새벽 바다처럼 넘실거렸다.
낯설지만 활기찬, 묘하게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출발선에 섰다.
사람들에 밀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다 마침내 출발선을 통과했다.
아내와 나는 페이스를 조절하며 조심스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6마일 정도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8마일을 지나며 숨이 가빠졌고,
서로의 페이스를 맞추는 것조차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각자의 리듬으로 달렸다.
10마일 지점을 넘어서자 다리는 무거워졌고,
달림과 걷기를 반복하며 겨우 피니시 라인을 향했다.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했다.
달리는 동안 펼쳐진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헌팅턴비치의 시원한 해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바람에 실려오는 싱그러운 바다 내음.
길가에는 푸른 잔디와 봄을 알리는 노란 꽃들이 반겼다.
응원하는 사람들,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 물과 간식을 건네는 손길들.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진 이 행사는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공연 같았다.
지친 몸으로 피니시 라인에 들어섰을 때, 뜻밖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서툰 글씨로 적힌 “우리 이씨 화이팅”이라는 팻말.
여섯 달 된 손녀를 안은 며느리와 두 아들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 힘들었던 기억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아직 이렇게 달릴 수 있는 몸이 있고,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응원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선물 같았다.
완주보다 값진 것은,
이 길을 함께 달리고 끝까지 기다려준 마음이었다.







헌팅턴 해변의 마라톤에서 가족과 함께 10마일을 뛰셨다니 축하드립니다.
멋진 사진까지 보여주셔서 더욱 특별하게 여겨집니다.
'이씨 가족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