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을 지닌 아름다운 카디날은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새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카디날을 만난 것은 애리조나로 이사와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동이 채 뜨기도 전에 뒤뜰 담장 너머로 날아든 붉은 카디날의 모습이 첫눈에 나를 매료시켰다. 어스름한 새벽시간이 아니더라도 붉은 카디날의 모습은 초록의 숲속에서 언제나 뚜렷하게 내 시선을 끌었다. 한동안 나는 숲속에서 선명하게 눈에 띄는 카디날의 안전이 걱정 되었다. 하지만 카디날은 자신의 생존보다는 더욱더 화려하게 빛나는 붉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지켜가고 있었다. 가문 좋은 규수에게 선택받아 훌륭한 자손을 세상에 많이 남기는 것이 자신의 생존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카디날은 경우에 따라 수시로 자신의 모습을 세상의 색으로 바꾸어 가며 살아가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랐다. 생존을 위해 시세를 따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색을 지켜가며 세상에 도전하는 카디날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딋뜰 담장너머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카디날의 먹이 상자를 없애 버리기로 한 것은 우리 집을 찾아오는 조그맣고 귀여운 허밍버드 때문이었다. 허밍버드는 유난히도 자신들의 영역에 다른 새들이 날아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허밍버드가 집 뜰 어느 곳이든 둥지를 지어 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될수록 많은 허밍버드가 우리 집 뜨락에서 쉼 없이 재잘거리며 춤추듯 날아다니는 모습을 즐기고 싶었다. 우선 수많은 핀치가 날아들던 핀치 먹이 상자를 없애버렸다. 다음으로 카디날 먹이 상자를 없애고 그 자리에 허밍버드가 둥지를 짓는데 사용한다는 솜뭉치 덩어리를 걸어 주었다. 걸어 두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그 솜뭉치를 조금씩 떼어서 하늘에 날려 보내기도 하고 허밍버드가 동지 짓기를 선호한다는 나무도 숱하게 심어 주었다. 그 후 카디날이 자신의 먹이상자가 있던 곳에 찾아와 가끔 서성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짠하게 아팠다.
한동안 뜸하던 카디날이 어느 날부터 다시 찾아와 평상시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먹이 상자가 있던 반대편에 있는 오렌지 나무에 수컷과 암컷이 번갈아 드나드는 것이었다. 얼마 후 오렌지 나무에서 카디날 부부가 둥지를 짓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갖가지 나뭇가지를 물어 오고 그 중에는 우리가 날려 보낸 솜 조각도 섞여 있었다. 자신을 쫒아내고 먹이 상자도 사라져버린 야박한 곳에서도 카디날은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냈다. 비록 먹이를 구하는 일은 어려워졌지만 다른 새들의 방해 없이 그들의 둥지를 틀 수 있도록 만들어진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내 오렌지 나무 한구석에 카디날의 둥지가 마련되었다. 그곳에서 암컷이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은 잠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알을 품은 지 두 주가 지나고 두 마리 아기 새가 태어났다. 엄마, 아빠가 된 카디날은 이른 아침부터 아기새를 위해 쉬지 않고 먹을 것을 날아오고 그들의 주위를 지켜 주었다.
초록의 숲에서 유난히 붉게 빛나는 그들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