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꾸기 / 신 혜원

 

난 지금까지 내 손으로 한 번도 텃밭을 가꾸어 보지 못했다. 남편이나 시댁 어른들이 작은 텃밭을 정성스레 가꾸는 것을 여러 차례 건성으로 바라보기는 했었다. 그리고 따서 먹는데 는 일등으로 손이 갔었던 기억이 난다. 엘에이 아파트에서 살고부터는 주말마다 마켓에 가서 싱싱하고 싼 야채를 듬뿍 사들고 와서 맘껏 요리하고 먹는 즐거움을 누리느라 텃밭 가꾸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지난 유월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이었다. 사우스베이 글 사랑 모임에서는 텃밭의 제왕, 이진수 시인의 집-서정 마을-을 방문했던 것이다. 걸어 들어가는 입구부터 빽빽한 녹색 텃밭으로 시작해서 들어갈수록 신록의 계절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자연 농장 숲속이었다. 크게는 감나무, 대추, 레몬, 포도나무들이 서있었다. 처마 밑 사이사이에서는 애호박이 넝쿨을 지어 서로를 배려하듯 엉킴이 없이 질서 있게 녹색으로 뻗어 올라가고 있었다. 밑에는 상추, 고추, 깻잎, 방울토마토, 가지 등이 자라고, 검은 진돗개가 중앙에서 보초병 역할을 하는 사이 안으로는 닭장에서 닭들이 알을 낳아주며 살고 있다. 앞마당 작은 호수 안에서는 예쁜 색깔의 어린 잉어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그야말로 올게닉 텃밭 재료로 정성스레 만든 손맛의 환상적인 식탁이었다. 십 오륙 명 정도의 회원들이 감탄의 입 안으로 쉴 새 없이 영양섭취를 하느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특히 알라스카 산 연어와 농어회, 열무와 고추김치, 재래식 된장찌개, 쑥 개떡,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실 액기스와 홍화씨 가루 시식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미 중에 특미였다.

 

저녁 식사 후 녹색으로 빙 둘러싸인 산장 분위기의 뜰에서 인공 연못 아래로 호수를 통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각자 써온 행시를 읽고 감상을 했다. 주제는 ‘꿈꾸는 여인’ ‘신록의 계절’, ‘텃밭 가꾸기’였다. 어쩌면 우리의 모임 장소에서 이 세 가지 주제를 다 절절히 실감하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시원한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이진수 씨의 ‘텃밭 가꾸기‘ 열정을 듣는 동안 내 가슴은 어느새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했다. 자녀들을 멀리 떠나보내고 텃밭을 가꾸며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는 심정이었으니 외로움과 근심걱정도 사라졌으리라. 텃밭을 연구하며 씨앗 하나라도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갖은 정성과 사랑으로 돌보셨단다. 그들이 자라서 주인에게 효하듯 기쁨과 보람을 주니 이웃과 나누는 뿌듯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렇게 미소를 잃지 않는 행복메이커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모두 힘찬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최근 심적인 갈등으로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몹시 우울해져 있었다. 혼자서 힘들게 살아가는 나약한 동생이 너무 짐스러워서 내 동댕이치고 싶고, 훌훌 그녀 곁을 떠나버리고 싶었다. 왜 해필 내 주위에서 내가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며 날 힘들게 할까? 정말 싫었다. 동생 주변 인물들도 모두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좋을 수는 없다. 그래서 며칠간 동생의 전화도 일부러 받지 않고 귀를 막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궁금하면서도 내 마음 문이 열리지 않아 점점 냉랭해져 가고 있었다. 그녀가 바뀌지 않는 한 내 마음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 글 사랑 모임의 텃밭 방문은 서서히 내 마음이 녹아지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 심령속의 텃밭부터 다시 갈아엎고 싶어졌다. 새롭게 영근 씨- 잠을 푹 자고난 숙성한 씨앗으로 키워 다시 심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농사를 전혀 모르는 나는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수없이 바뀌고, 믿을 수 없고, 거짓말을 해도 흙에서 자란 식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무엇을 심던지 심은 대로 나고, 거름을 주고 공을 들인 대로 자라며 열매를 맺어 기쁨과 행복을 주기 때문에 농사를 하는 사람의 보람이 거기 있다고 한다.

 

난 주위에서 흙이나 식물보다 못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내 마음 밭만큼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텃밭으로 잘 가꾸어보고 싶다. 비록 흙을 밟고 씨앗을 심을 정원은 내게 없어도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응어리부터 찾아서 다시 경작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직도 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미움의 잡초를 뽑아버리고 이해와 사랑으로 영근 씨앗을 마음 밭에 심으면 언젠가 싹트고 자라서 환하게 웃는 ‘텃밭’은 아니어도 ‘마음의 꽃밭’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