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따뜻한 선물 / 신혜원

 

 

최근에 크리스마스 날을 앞두고 가는 곳마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에 맞던 성탄절의 기다림과 설렘이 사라진지 오래여서 그저 덤덤하다. 요즈음엔 음악이 담긴 카드로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인사를 하니 편리하기는 하지만 정성이 담긴 손 글씨 카드에 선물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은혜 입은 분들께는 조그만 선물이라도 해야지 생각하니 무엇을 해야 좋을지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그러던 중 내가 오래전 시부모님께 선물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오년 전 일이다. 한국에서 내가 결혼한 첫 해 겨울이었다. 내가 양호 교사로 나가던 초등학교도 방학이고, 남편도 바쁜 교회 행사 기간이 지난 뒤라 함께 시댁으로 늦은 신년인사를 드리러 갔다. 무슨 선물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고민이 되었다. 남편은 신학 대학원생으로 교회 전도사였으니 생활은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 형편에 맞게 시장에 가서 따뜻한 털양말 두 켤레를 샀다. 시부모님께 드릴 선물로 예쁘게 포장을 하고 카드를 곁들였다. 마음과 정성만 담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남편과 기차를 타고 안동에서 내린 후 또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중 얼마나 추운지 손을 비벼가며 겨울을 한창 만끽하였다. 남편의 고향인 의성에서 단촌까지 버스를 타고, 또 내려서 언덕위에 시부모님 댁까지 한참을 걸어서 늦게 도착했다. 시부모님은 그저 반가워하시며 따뜻한 아랫목에 앉으라 하시고, 이불도 덮어주시며 몸을 녹여 주셨다. 난 몸이 좀 풀린 다음 선물이라고 조그만 것을 드리고는 건넛방으로 쓰윽 자리를 옮겼다. 그 방에는 이미 다른 형제자매들이 시부모님께 드리고 간 선물들로 가득 놓여 있었다. 비싼 꿀, 영양제, 겨울 의복, 귤 상자 등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준비한 선물은 너무도 빈약해서 부끄럽고 후회가 되었다.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다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세배를 드리고 다른 식구들은 인근 어른들께 인사를 하러 갔다. 나와 남편은 방을 치우고 있는데 시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내가 사드린 털양말을 꺼내어 만지시면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준 선물이 가장 따뜻하다. 올겨울엔 덕분에 따뜻하게 잘 지내겠다.” 하시는 거였다. 나와 남편이 놀라서 보니 시장에서 산 양말이어서 그런지 코가 빠져 있는 털양말을 꿰매고 계시질 않는가. 오기 전날 밤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그저 따뜻해 보여서 산 양말이었으니……. 난 너무도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정말 하잘것없는 양말을 선물이라고 받으신 시아버지께서는 가난한 아들과 며느리의 형편을 깊이 헤아려 가장 따뜻한 선물로 받아주시며 배려해주신 말씀인줄 누가 모르겠는가.

 

 

난 요즈음 선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마음으론 하고 싶은 분이 너무나 많아서이고, 정말 해드리고 싶은 분은 이미 계시질 않으니……. 또 무엇을 해야 받으시는 분이 내 마음을 읽고 정말 고맙게 잘 사용하실까도 고민이 된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도 빼 놓을 수 없는 염려 중에 하나이다. 나도 선물을 가끔 받아보지만, 사실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일 때도 있어서 다시 남을 주는데 사용할 때도 있다, 주신 분에게는 미안하고 내색은 안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가. 차라리 그럴 바엔 하지 않으면 어떨까 싶다가도 마음에 걸리니 이래저래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선물 받으시는 분이 모두 나의 시아버님 마음 같으면 얼마나 좋으랴.

 

 

선물은 참 묘하다. 주는 사람은 오히려 주는 기쁨과 자기만족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는 것 같다. 의무적으로 했더라도 하고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더욱 기쁘지 않는가. 그러니 선물은 받는 입장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된다. 때론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예 선물을 거절하는 분도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선물이든 받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선물의 가치는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을 실제로 겪게 되니 말이다. 나도 아무리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선물이라도 귀하게 받는 마음을 갖고 싶다. 왜 이런 선물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하는 분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보고 싶다. 그리고 선물을 받을 때는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받았든지 잘 받았다는 답이라도 보내야겠다.

 

이곳 엘에이는 더운 편이어서 겨울을 체감하기 힘들다. 그래도 성탄절 전 주 부터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조금은 겨울 분위기가 느껴질 것 같다. 목 스카프와 등 따뜻한 조끼가 고마울 때다. 어디 마음 속 까지 따뜻하게 해줄 기억에 오래 남을 선물, 뭐가 또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