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아!

43년만에 다시 불러보는 네 이름이로구나.

네가 있는 그 곳에도 사계절이 있는 거니? 그리고 이렇듯 꽃이 피고 봄비도 내리는 거니?

지금 창 밖에는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아침부터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기어이 비를 뿌려 주는구나. 

오늘은 2월 22일 일요일.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 주야. 교회에서는 고난 주일이라 한다더구나.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의 배웅을 받으며 사순 첫 주일 미사를 잘 드리고 왔어. 

오후가 되면서 빗소리가 제법 세차지더니, 밤이 깊어 가는데도 그칠 줄을 모르네?

빗소리를 듣고 누워 있노라니, 아득히 지나가 버린 어제가 떠오르고.......

그래, 네가 떠오르더구나.

태원아!

너가 이 지상에 아직 살아 있다면, 내 삶은 얼마나 더 풍성해졌을까.

잊고 있다가도 어디선가 씨익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은 너!

너는 나를 참 깎듯이 대했지. 이 세상에서 너처럼 나를 깎듯이 대해준 사람도 없을 거야. 

너가 살아 있으면 우린 모든 얘기를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너. 열 일곱 살에 머물러 버린 네 모습은 내겐 언제나 수줍은 소년으로만 남아 있지. 

때로는 생각나고 더러는 잊혀지며 참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그지?

그런데 오늘따라 왜 너가 안타깝도록 그리운지 모르겠어.

빗소리를 너가 따라온 거니, 아니면 너가 빗님을 모셔온 거니?

태원아! 

지금 나는 너와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안녕도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그 마지막 순간까지 몇 시간 째 흑백 필름을 돌리고 있단다.

벌써 몇 번을 되돌리고 있는지 몰라. 

너도 생각나니? 우리 처음 만났던 때를?

나는 중학교 2학년, 너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지.

교회 친구 경련이 동생이랑 너는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왔었지. 넌 늘 한 곁에서 조용히 머물다 가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넌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조심스럽게 물어왔지.

"저, 앞으로 누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평소에도 수줍음이 많아 조용하기만 했던 너. 

그 말을 하기까지 너는 얼마나 많이 망설였을까.

너의 그런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난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했지. 

 "그럼! 난 네 친구 누나하고 친구니까 당연히 누님이라 깎듯이 불러야지?"

그때 너의 활짝 웃던 모습, 잊혀지지가 않는구나.

약간 겸연쩍은 표정으로 콧잔등에 주름을 지으며 웃던 아이.

그게 너와 나의 정식 첫만남이었지. 

노래를 잘 부르던 너는 성악가의 꿈을 키우며 잘 성장하고 있었지.

공연을 할 때마다, 너는 조심스럽게 티켓을 갖다 주었고, 난 언제나 객석 한 귀퉁이에 앉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지.

가끔, 너는 구덕산  정상에서 노래를 부르고, 우리는 산 중턱에서 너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었지.

라스파뇨라, 니나의 죽음, 불 꺼진 창, 보리밭, 선구자, 언덕에서.......

그 중에서 나는 <언덕에서>란 노래를 제일 좋아했단다. 

감정이 실린 호소력과 울림이 있는 목소리는 산행을 하던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다들 두리번거리게 했지.

그때, 나와 너의 친구들이 얼마나 널 자랑스러워했는지 넌 모를 거야.

가끔 해운대 바닷가에서도 노래를 불러주었지.

거센 해풍이 목에는 안 좋다 하면서도, 바다를 좋아하던 나를 위해 넌 기꺼이 내 부탁을 들어주곤 했지. 

그럴 때마다 네 얼굴을 보지 말라며 얼굴을 가리다시피 하며 불러주던 코믹한 네 모습! 

난 이팝꽃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까르르 웃곤 했지.

인상 쓰는 모습 보여주는 게 부끄럽다던 너. 고등학생이 되었어도 너의 때 묻지 않은 순박함과 수줍음은 하나의 덕목이었어.

난 그런 네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단다.

언제 너가 제일 멋있었는지 말해 줄까?

너는 고 1, 나는 고 3. 그 해 여름 방학 때 너는 너의 시골 밀양 집으로 날 초대했지. 

나이 차이가 있긴 해도 여고생이 남학생 집을 방문한다는 게 조심스러워 난 내 단짝 옥남이를 데리고 갔었지. 

역에 도착한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 너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올 때의 그 멋진 모습이란!

그래, 바로 영화의 한 장면이었어.

호리호리한 몸매에 1미터 70이 넘는 키. 연미색 밀짚모자에 하얀 와이셔츠.

깃과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던 네 모습은 바로 제임스 딘이었단다.

패셔너블한 네 모습 앞에서 여고 교복을 입은 우리의 모습은 청순하기보다 촌스러웠지.

지금도 너의 그 멋진 모습은 정지된 한 장의 영화 장면처럼 내 가슴에 붙박혀 있단다. 

아랑각의 댓숲 바람에 묻혀오던 아랑의 슬픈 전설은 우리들 가슴을 아리게 했고, 강가에서 보트를 태워주며 노래를 불러주던 네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였어.

태원아!

그런데 운명은 어쩌면 그렇게 가혹한 거니? 

그 아름다운 여름날을 보낸 지 일 년 만에 네가 가 버릴 줄 어떻게 알았겠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무섭도록 소낙비가 쏟아지던 날.

개울에는 돌 구르는 소리가 섬짓하도록 굉음을 울리고, 전깃줄은 바람에 잉잉대며 짐승처럼 울부짖었지. 

아, 그 와중에 수원지 둑이 터지고 온 동네가 쑥대밭이 되던 날.

너는 피아노와 함께 영원한 음계속으로 흘러가 버렸으니-

우리 동네 사람이 72명이나 죽어 나가다니....... 이게 날벼락이 아니고 무엇이냐?

앞집 이층이 무너지고 우리 집 기둥이 내 어깨를 내리치던 그 날.

나도 반은 죽은 목숨이었지. 

그런데 저녁 즈음에 너의 비보를 들었을 때의 충격에 비하면 내 어깨의 통증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

그 날 이후, 나는 왜 그리도 자주 하늘을 보게 되었는지 몰라.

태원아!

너는 거기서도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고 있니? 

인상 쓰는 게 부끄러워 아직도 천상의 소녀들 앞에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노래를 불러주고 있니? 

태원아!

오늘따라 빗님이 그칠 줄 모르는구나.

너에 대한 내 그리움도 하얗게 밤을 지샐 것만 같애.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하느님이 함께 계셔......" 

그래, 찬송가 가사처럼 하느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는 게 위안이라면 작은 위안이구나.

태원아! 

보.고.싶.다.

만날 때까지 잘 있어.

단발머리 누님이 이렇게 늙어버렸다고 못 알아보면 안 돼, 알았지?

대신, 빗소리를 반주삼아 너가 즐겨 불러주었던 <언덕에서>를 불러주마.

너도 나직한 허밍으로 함께 불러주렴. 

-저 산 넘어 물 건너 파랑 잎새 꽃잎은 눈물짓는 물망초 행여나 오시나 기다리는 언덕에 님도 꿈도 아득한 풀잎에 이슬방울 왼종일 기다리는 가여운 응시는 나를 나~를 잊지 마오 왼종일 기다리는 가여운 응시는 나를 나~를 잊지 마오-

태원아!

노래를 부르니 눈물이 나네? 노래 가사가 꼭 너의 유언 같아서.......

그래, 너를 잊지 않을께. 아니, 잊을 수가 없지.

밤은 점점 깊어가고 빗소리는 더 높아졌네?

이제 정말 안녕! 

태...원...아......!

천상에서나마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