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1913∼1975)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가을’ 하면 김현승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가을의 기도’라는 시 때문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작품인데, 누구 시인지 몰라도 익숙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가을의 기도’ 말고도 유독 김현승의 시 중에는 가을에 어울리는 작품이 많다. 그중에서 한 편을 고르자면 ‘아버지의 마음’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아버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여준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아버지들이 있다. 바쁜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굳센 아버지, 바람과 같은 아버지도 있다. 폭탄을 만드는 아버지, 감옥을 지키는 아버지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있다는 점 말이다. 애당초 ‘아버지’라는 말은 자식이 없으면 성립이 될 수 없는 단어이다. 자식이 있어서 아버지가 된 모든 사람은 한마음으로 자식을 기르고 사랑한다. 난로에 불을 피우고, 참새처럼 조바심 내며 아이의 앞날을 걱정한다. 밖에서는 독한 사람도, 무서운 사람도 아버지가 되면 똑같이 자식바라기가 된다는 시인의 표현이 참 공감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확하게 아버지를 파악한 부분은, 눈물은 없지만 외로운 사람이라는 부분, 그리고 아버지의 때가 아이를 통해 씻긴다는 부분이다. 아버지는 오욕과 술에 젖어 밤늦게 돌아오지만, 잠에 든 자식을 보면 세상만사 무슨 일이든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 아버지들은 이렇게 살아왔다. 이런 아버지를 좀 안아 드려야 할 것 같은 가을이다.
나민애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