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과 합체

 

공순해

 

변신과 합체 (Transformer & Combined). 여섯 살짜리 손주가 가장 좋아하고 많이 쓰는 말이다. 하긴 로봇놀이 좋아하는 애들만일까. 록뮤직에 열광하는 청소년은 물론 20, 심지어 국가의 부()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도 가장 좋아하는 말이 이게 아닐는지. 아마 노년도 마찬가지일 게다. 목숨 다하는 날까지 변화하지 않고는 생존에 적응할 수 없는 게 생명이니까.

그러니 생로병사를 갖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자연 발생적이었던 언어는 르네상스 이래 권위가 더해져, 몸을 바꾼 나머지 인간을 좀비화하여 그 정신 체계(?)를 교란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손주가 로봇놀이 하고 있는 옆에 앉아, 언어론 저런 변신 합체 놀이가 안 될까 공상해 본다.

우선 글자를 변신시켜 보자. 자모 판을 머릿속에 펴 놓고 상상을 시작한다. 내가 공씨이니 우선 공을 선택한다. 공을 뒤집으면? 국을 뒤집으면? 순간 나는 의자 등에 기댔던 몸을 벌떡 일으켜 가상의 게임 조정기를 더욱 좨쳤다. 공과 운, 국과 논, 군과 곤, 놈과 묵, 는과 극, 몬와 굼, 몸과 뭄, 문과 곰, 옴과 뭉, 욕과 늉, 응은 뒤집어도 응이다. 를도 그렇구나.

Hey presto! 외치기만 하면 마구 변신해대는 애들 만화 같다. ! 대박이다. 흥분한 나머지 침을 꼴깍 삼켰다.

공을 뒤집어 변신시키면 운. 공도 운도 어디로 굴러갈지 아무도 모른단 점에서 둘은 의미의 합체를 이룬다.

국을 뒤집으면 논. 논의 소출이 좋아야 국 건더기도 생긴다. 이도 의미의 합체다.

군과 곤도 합체가 될까? 물론이다. ()이 무엇인가. 국방의 곤(=기본)이다.

놈과 묵도 그렇다. 놈이라고 누군가를 잘못 불렀다간 묵이 될 것이다. 묵사발. 하하!

는과 극은? ~는 이란 조사가 붙어야 극()에 달하는 상황도 원만하게 종결된다.

몬과 굼은? (먼지)을 빨리빨리 청소하지 않으면 굼(굼벵이, 굼뜨다)이라고 핀잔받기 십상일 것이다.

몸과 뭄은? 몸은 마음이잖나. + 아래 아+=맘이다. 고어에선 ㅗ와 ㅜ, ㅏ의 흔적이 같다.

문과 곰은? 하긴 문을 나서면 곰처럼 놀아야 하루가 편하다. 여우처럼 놀다가는 욕만 먹고 만다.

옴과 뭉은? 옴이 옮으면 치료를 빨리 받아야지, 아니면 피부가 그냥 뭉그러질 것이다.

욕과 늉은? 욕이란 말을 쓰기 곤란할 때, 늉을 거꾸로 쓴 글자! 라고 하면 좀 더 점잖게 느껴지지 않을까? 실제로 이렇게 쓰는 분을 본 적이 있다.

응은 뒤집어도 응. 긍정의 힘이다.

를도 뒤집어 봐야 또 를. 조사 ~. 연결의 힘이다.

영어의 경우엔 어떨까? 어느 전직 대통령 덕에 요즘 유행하는 말 Oral hazard. 여기에 m을 얹으면 Moral hazard 가 된다. 도덕이 해이해지면 구설수를 불러올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m 한 글자 빼서 변신하면 해이란 합체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건 한국식 영어다.

진짜(?) 미국식 영어 constitutionconstipation 은 어떤가. tu pa로 변신하면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질 것이다. 헌법이 잘 소통되지 않아, 변비 현상을 일으켰다? 분명 정부 폐쇄 같은 비상사태가 일어나 국민은 불편해질 게다. 따라서 두 단어는 합체가 잘 이루어져야 할 운명의 단어들이다.

onionopinion의 경우, onionPi가 첨가돼 변신을 일으킨 결과는 어떨까? 양파가 심하게 매우면 자를 때 눈물 나고, 의견이 심히 신랄하면 들을 때 상대편에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의견을 개진할 때는 양파 자르듯, 각전의 난전 몰 듯하면 불행한 결과가 올지도 모른다. 국민 행복 증진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 의정을 논하는 자리에 드잡이가 일어나는 경우가 바로 이 경우 아닐까. 그러니 이 낱말들도 합체가 잘 이루어져야 할 단어들이다.

합체가 잘 이루어지는 낱말엔 ten도 있다. 뒤집어 net가 되는데, 적어도 무엇이든 열 개는 모여야 네트가 되지 않을까. Time은 어떨까? Emit. 시간이 내뿜어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애들 말로 유레카, 도연명식으론 별유천지, 심마니 식으론 심봤다!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렇게 말이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더 찾아보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글자의 변신과 합체. 이 재미있는 유희(遊戱)를 더 풍부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지? 혼자만 즐기기엔 입이 너무 근지럽다. 자리를 뱅뱅 돌며 궁리에 빠진다. 느리게 흘러가는, 어느 비 갠 여름날 오후, 나는 변신과 합체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