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김의 온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채 우리는 길 위에 올랐다. 프랑스의 들녘과 스위스의 설산, 이탈리아의 고도(古都)들이 순례자의 여로처럼 이어졌다. ‘파리 커넥션’ 사역을 마치고 떠난 일주일간의 비전 트립은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또 하나의 기도였다.
여행 첫날, 차창 너머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하얀 능선이 하늘과 맞닿은 장엄한 정경 앞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대자연의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오직 존재의 고요뿐이었다. 압도적 침묵은 인간의 뜻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대신 말해 주었다. 세상의 높고 깊음을 초월한 순백의 세계를 마주해 마음은 낮아지고, 영혼은 맑아졌다.
이탈리아로 향하는 길목,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 이르러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찌를 듯 솟은 고딕의 첨탑들. 수백 년의 시간과 수많은 흰 대리석을 모아 올린 기도의 형상이 하늘 끝까지 닿아 있는 듯했다. 인간의 손끝으로 건축한 기원의 탑. 돌에 새긴 낱낱의 섬세함이 화음을 이뤄 거룩한 합창으로 봉헌되는 듯한 웅장함의 위용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신앙의 힘이란 얼마만한 열정과 헌신 위에 세워지는 것일까.
피렌체에서는 시간마저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전하는 고뇌와 비전, 단테의 시에 담긴 영혼의 갈망이 세월을 넘어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믿음을 아름다움으로 증언하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지중해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가자 풍경은 다른 세상을 열었다. 친퀘테레(Cinque Terre). 파스텔빛 마을이 절벽 위에 층계처럼 이어져 그림동화를 펼쳐 보였다. 짙푸른 바다와 다홍빛 지붕, 물가에 나란히 정박한 작은 배들이 서로의 색을 보듬고 석양에 빛나는 정경은 한 폭 수채화 속에 들어서 있는 듯 했다. 길이 없을 것 같은 세상 끝에서도 다름없이 삶을 일구고 있는 광경이 시골 외갓집처럼 정겹고 친근했다. 고장을 특징짓는 좁고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내리며 지나온 인생의 굽이진 길들이 떠올랐다. 오르막과 내리막, 샛길과 벼랑을 지나 비로소 만나는 탁 트인 절경. 삶의 길과 닮아 보였다.
보다 깊은 사유는 스위스의 융프라우에서 찾아왔다. 정상에서 주어진 자유시간, 나는 길을 잃었다. 설경의 눈부심이 시야를 가린 것일까. 몇 번을 되돌아가도 제자리를 맴돌자 불안이 밀려왔다. 숨이 가빠지고 시야가 흐려질 즈음 한 젊은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도와드릴까요?” 가던 길을 멈추고 내 손을 잡아준 그녀는 나를 모임 장소까지 데려다 주고도 떠나지 않았다. “일행을 찾을 때까지 곁에 있을게요.”
그 말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다. 길 잃은 나그네에게 평안을 건네는 사랑의 손길이었다.
잠시 후 동행이 나를 찾아오고 나서야,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이름조차 묻지 못했지만, 내 마음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보내진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는 것을. ‘나는 과연 이 사람처럼 멈추어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내 안에서 조용한 물음이 일었다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트루아(Troyes)였다. 마을 전체를 둘러싼 포도원의 푸르른 들판, 붉은 지붕 사이로 교회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다. 오랜만에 듣는 맑은 음파가 오후의 햇살을 타고 가슴 깊이 노을빛으로 감돌았다. 장대한 자연의 위엄도,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도, 찬란한 예술의 걸작보다도 소박한 전원의 정취가 더 깊은 신앙의 고백처럼 다가왔다.
그 여운은 ‘쉼’이라는 여백의 온기로 마음을 감싸주었다. 웅장함을 지나고 경이로움을 넘어 나그네의 발걸음을 쉬게 한 것은 평화로움이였다. 융프라우의 두려움도, 밀라노의 장엄함도 피렌체의 감동도, 고요한 전원의 숨결 속에 하나의 마음으로 모아졌다. ‘평안’이었다.
여정의 끝에서 눈을 들어 고백한다.
“길을 헤매고 나서야, 비로소 길이 보입니다.”
멀리서 저녁 종소리가 그윽이 울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