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중앙일보] 발행 2016/09/19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9/18 12:04
작년 추수감사절 전날이었다. 커다란 UPS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다. 미션비에호에 사는 친구 나리한테서 온 포장이 안전하게 잘된 단감 상자였다. 들여다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송료라 고마운 마음에 왈칵 미안한 마음이 겹쳤다.
저편의 전화 목소리는 그저 정으로 먹으라는 말만 되풀이 해댔다. 뒤뜰 감나무에서 남편이 손수 땄고 하나씩 차곡차곡 사이사이에 신문지를 켜켜이 넣어 잘 포장한 것도 남편의 솜씨라 했다. 이렇게 마음을 함께 싸서 UPS 회사까지 운전하고 가서 배달시키기 위해 줄을 섰을 친구 남편의 기다림을 생각하며 감을 먹으려니 목이 메이듯 싸아해왔다. 우리 집 뒤뜰에도 감나무가 있다. 올해도 알알이 탐스럽게 감이 달렸다. 낮 동안 남가주의 푸른 하늘 그 볕과 뺨을 비빈 감나무는 옹골지게 속살을 찌워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새들이 몰려와 익은 쪽부터 쪼아 먹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민첩한 다람쥐 부대의 습격은 내 속을 꽤나 태웠다. 이참에 나리의 UPS 단감은 속상한 내 마음을 알기나 하듯 고맙게 다가왔다. 베타카로틴 함유량이 많아 감은 껍질도 속살도 주황색일까? 내 나름대로 동양의 감은 '아낌없이 주는' 과일이라고 굳이 믿게 된 이유는 감나무야 말로 완전히 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생 걸로 먹고, 말려서 먹고, 익은 다음에 먹는데 바로 단감이, 곶감이, 또 홍시의 단계가 그렇다. 어느 과일이 이런 재롱을 피우는가. 새 순 돋는 잎은 말려 감잎차를 끓여 마신다. 떨어진 낙엽은 애절한 마음을 적어 연서로 책갈피 속에 간직한다. 감을 갈아 짠 즙 액체는 천을 물 들이는 물감원료가 되기도 한다. 그뿐인가. 마지막 혼신의 즙과 액을 추출한 감식초가 그렇다. 나의 투병기간 동안 민간전래 방법으로 숙성시킨 이 식초를 많이 애용했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글도 쓰고 매일 걷기도 한다. 그야말로 완전 희생을 실천하는 신비한 감의 존재를 누구보다도 나는 고마워한다. 더 기막힌 비밀은 감씨를 아무리 심어도 감나무는 안 나온다는 사실이다. 싹이 터서 나오는 것은 도토리만큼 작고 떫은 고욤나무다. 이때 감나무에 접목해야만 감이 열리는 진짜 감나무가 되는 비밀은 엄청 가슴 두근거리게 한다. 감씨를 심어 고욤나무가 나오면 자라길 기다린다. 그 줄기를 대각선으로 째고 기존의 감나무 가지에 접을 붙이는 것이다. 완전히 접합되어야, 인내와 기다림 속에서 새 생명인 '감나무'의 발아가 시작된다. 나리의 UPS 단감은 극상품이었다. 잘 익고 탐스럽게 잘 생긴 것들로만 골라 많이도 보내준 나리 내외 마음이 더 극상품이다. 어떻게 UPS라는 택배를 이용해 나누어 먹을 생각을 했는지, 정으로 먹으라는 나리의 음성이 계속 귓가를 맴돈다. 우리집 감농사가 잘되어도 나는 UPS로 내 주변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을 했을까? 다람쥐와 새들과 개미떼들에게 자기 살을 나누어 주는 우리집 단감나무가 이기적인 내 좁은 생각을 부끄럽게 했다. 나리의 UPS 단감소포는 한 수 가르쳐 준 스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