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를 올려라

 

                                                                                          신순희

 

아직은 컴컴한 새벽이다.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벽에 있는 스위치를 올린다. 갑자기 눈이 부셔 앞을 볼 수가 없다. 눈을 밑으로 내리고 잠옷을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차츰 빛에 익숙해진다. 침실을 나오면서 줄줄이 스위치를 올린다. 거실에 부엌에 패밀리룸에 불이 들어온다. 스위치와 함께 하루가 열린다.

코앞까지 전기가 들어 와 있어도 손가락 하나로 ‘탁’하고 스위치가 올려지지 않으면 빛은 없다. 간단하고 쉬운 행위지만 실행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남편은 스위치를 올리기만 하지 내리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옷장 속 불을 켜고 옷을 꺼내면 그만이다. 화장실을 나오면서 불을 끄지 않고 문을 닫아버린다. 가는 곳마다 불을 켜고 다닌다. 나는 불을 끄며, 매번 잔소리한다. 사람이 왜 그리 뒤를 돌아보지 않느냐고. 남편은 불을 밝히는 사람이다. 그렇다. 긍정적인 사람이 스위치 올리는 걸 좋아한다. 내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 올려야 빛이 들어오고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사물뿐 아니라 마음에도 불이 들어와야 시동이 걸린다. 애초에 스위치는 올리라고 있는 것을.

언젠가 겨울 폭풍우에 큰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전깃줄을 건드려 시애틀 지역 일부가 사흘 밤 동안 암흑천지로 변했다. 저녁 식탁에 오로지 빛이라고는 촛불밖에 없으니 침침하고 고요했다. 희미한 촛불 아래 서로의 얼굴이 낯설게 그림자 졌다. 난방이 안 되니 실내가 금세 냉장고 온도로 내려갔다. 식구들이 거실 벽난로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나마 장작이 준비되어 있고 벽난로를 땔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어둠 속에 빛은 늘 희망이다.

생각을 스위치 해보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게 오히려 잘됐다. 컴퓨터는 잊어라. 기계화된 문명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이다. 그 옛날, 반딧불과 눈빛으로 공부하던 ‘형설지공’이 있었고,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하던 어머니들이 있었다. 화롯가에 둘러앉아 밤을 구워 먹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벽난로에 고구마를 굽고 불쏘시개로 불꽃을 일으키고….. 식구들 얼굴을 바라보니 발그레하니 온화한 눈빛이다. 밥만 먹으면 각자 방으로 쏙 들어갔었다.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긴 얘기를 나눈 것이 언제였던가. 가족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된다.

저녁에 식구들이 돌아오기 전, 나는 방방에 스위치를 올린다. 포근한 가정은 불빛이 좌우한다. 불 꺼진 창처럼 쓸쓸한 게 없다. 밤중에 불이 하나도 켜지지 않은 집을 보면 왠지 허전하다. 빈집인가, 벌써 자나, 대화가 끊긴 집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창을 통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을 보면 안심이 된다. 따뜻한 식탁이 연상된다.

부엌은 전등이 많을수록 좋다.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하며 식구들은 온종일 부엌을 들락거린다. 강아지까지 서성대는 공간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곳도, 마무리하고 스위치를 내리는 곳도 부엌이다. 부엌이 잠들어야 비로소 침실 옆 스탠드의 스위치를 ‘탁’ 소리나게 끈다. 불빛도 휴식이 필요하다. 새 힘을 충전해야 한다. 노상 스위치를 올리는 남편도 잠잘 때는 아주 작은 불빛에도 민감하다. 밝은 내일을 위하여 캄캄한 밤을 청한다.

오늘도 남편은 출근하느라 옷을 챙겨입고 옷장에 불을 켜 둔 채 옷장 문을 활짝 열어두고 나간다. 그래 스위치를 올려라, 불을 밝히는 사람아. 전기료가 뭐 그리 대순가 얼굴이 환하면 됐지. 파워가 나가면 큰일 난다.

 

[2014년 2월]


--재미수필 제18집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