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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은 노을 속으로 / 정조앤

                                                                                                                                               

  아버지가 마흔을 갓 넘기신 어느날,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의식 없이 인공호흡에 의존하다 아무 말 없이 먼 길을 떠났다. 삼십 중반의 아내와 열다섯 살인 장녀와 3년 터울의 세 명의 딸, 첫 돌 지난 막내아들을 남겨 두고. 당시 큰딸인 나는 어머니를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철부지 동생들을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착각 속에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암울한 시기였다. 꿈과 낭만을 누려야 할 사춘기 소녀인 내가 그 나이에 겪어야 할 현실은 너무나 냉정했다.

  아버지는 맏자식인 나를 유난히 사랑해 주셨다. 마음이 여리고 눈물도 많아 아버지를 근심케 했다. 가끔 낚시 갈 때마다 데리고 다닌 이유를 한참 후에야 알았다. 말없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그 아이가 분명 좋아할 것이 그곳에 있으리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가끔 외출에서 돌아오실 때는 한잔 술에 기분이 좋으셨다. 평소에는 말씀이 없고 빙그레 웃기만 하시던 아버지였지만 그런 날은 나를 앉혀 놓고 심중에 있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의사가 되길 원했다만, 너는 변호사가 되어라.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닌, 수줍음 많은 내게 아버지는 기대치 이상의 말씀을 하시곤 했다. 공부하는데 돈이 모자라면 내 뼈를 팔아서라도 널 공부시키마. 그런 말씀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랐다. 아버지는 공상에 잠긴 듯한 딸의 눈빛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셨을까.

  서울 살다가 이사한 시골에서 사람들은 손재주가 남다른 아버지를 만물박사로 불렀다. 하루는 동네에 혼자 사는 과부 점쟁이가 아버지를 급히 찾았다. 밤새 불어 닥친 거센 바람으로 슬래브 지붕이 모두 날아갔다는 것이다. 동정심에 거절 못 하시고 도와줄 몇 분과 함께 하루해가 저물 때까지 고쳐주셨다. 그 고마움에 정성스럽게 준비한 저녁상에 술까지 대접받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날 저녁 어머니의 바가지 긁는 소리에 아무 대꾸도 못 하시던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언젠가는 집에서 기르던 여덟 마리 토종닭이 비틀거리며 한 마리씩 쓰러졌다. 아버지는 이유를 아시는 듯, 그물 깁는 나일론 실과 큰 바늘을 급히 찾으셨다. 면도날을 라이터 불로 지지시더니 위 부위를 절개하셨다. 위 주머니를 뒤집어 소독약으로 씻은 뒤 다시 봉합하여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뉘었다.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난 닭은 다섯 마리였다. 사연인즉 여기저기 놓아둔 쥐약을 모이인 줄 알고 쪼아 먹은 것이었다. 그때 의사가 되고 싶으셨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아내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한 남편이었다. 가정보다는 남의 일을 더 챙기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후에도 한이 풀리지 않으셨던지 어머니는 원망 섞인 말씀을 자주 하셨다. 남겨 둔 재산이 한 푼 없어 눈앞이 캄캄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저린다.

  술과 낚시 좋아하시던 낙천적인 아버지,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어떤 모습으로 노년을 보내고 계실까. 아마도 이 거대한 미국 땅을 두루두루 다니시며 마음껏 즐기셨으리라. 마흔 넘어 낳은 금쪽같은 외 아들과 4명의 사위를 곁에 거느리고 어깨에 힘주시고 사셨으리라. 가끔은 한적한 바닷가에서 낚시로 건져 올린 백도미를 회로 치고, 남은 몸통으로 얼큰한 매운탕 끓여 술잔을 돌리며 흐뭇해하셨을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떠올려 보기도 한다.

  자식들의 집을 다니며 이곳저곳 손 봐주셨을 아버지를 요즘 부쩍 그리워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뭉게구름 사이로 눈길이 자주 머무는 것은 큰아들을 결혼시키고 마음이 허전해 질 무렵이다. 이제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곁에 계시지 않으니 안타깝다. 아버지! 하고 부르면 꿈속에서라도 단숨에 달려오실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에게 못다 한 사랑을 서늘한 가슴에 묻고 눈을 감지 못하고 가신지 올해 40주기를 맞았다.

  어머니는 칠십 중반이 되었고 막내로 태어난 남동생은 사십 초반이다. 모두가 안정된 생활로 접어들았다. 지금까지도 편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무엇인가 해 주고 싶었을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는 붉게 타오르는  서녁 하늘을 자주 바라본다. 얼큰하게 한잔 드신 아버지가 그립고 몹시 보고싶다. 아, 아버지...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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