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임지나
- <나 지금 가고 있다> 출판기념회를 축하하며
성민희
임지나 선생님의 첫 수필집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아는 임지나’를 부탁 받고 새삼 선생님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임지나 선생님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잘 익은 토마토라고 하고 싶습니다.
잘 익은 토마토는 껍질이 투명해서 훤하게 속이 들여다보입니다. 밖에서 보는 빨간 색깔이 그대로 속의 색깔입니다. 그래서 마음 따로 행동 따로의 이중성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그대로, 아무런 가감 없이 보이는 그대로 보면 됩니다. 저 말 속에 숨겨진 뜻이 무엇일까. 방금 한 행동이 진심일까. 뒤에 숨겨진 다른 뜻은 무엇일까를 굳이 찾아내려고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참 편합니다.
토마토는 껍질이 얇아서 잘 찢어집니다. 잘못 만지면 그냥 빨간 울음을 터뜨리며 항복해버립니다. 자기 형체를 버리고 허물어져버립니다. 선생님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모든 일이 다 내 탓이야 하며 항복을 해 버릴 뿐, 왜곡된 마음으로 오해를 품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키려고 변명하거나 포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짠할 때도 있습니다.
토마토는 과일이면서도 채소입니다. 과일과 같이 깎아내면 과일이 되고 음식을 조리할 때 넣으면 채소가 됩니다. 샐러드에 넣어도 맛이 나고 수프나 찌개에 넣어도 맛을 도와줍니다. 특히 라면을 끓일 때 넣어주면 라면은 고급 요리가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어느 장소에 가도 거리낌이 없이 잘 어울립니다. 삐죽거리거나 내숭을 부리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모임의 분위기를 살려주고 결집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유쾌합니다.
지난 4년간 재미수필가협회의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부탁을 해도 오케이 오케이. 익스큐즈가 없이 수용해 주시는 선생님. 아낌없이 베풀며 회원의 도리를 다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성정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저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지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날 때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그건 선생님의 잘못도 실수도 아닌 온전히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시대착오적인 의식에 의한 희생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환경 가운데에서도 비뚤어지거나 반항하지 않고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건 따뜻하고 헌신적인 심성의 어머니 덕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딸을 키웠습니다. 비록 정상적인 학교는 아니었지만 공민학교로 이끌어 한글을 익히게 했습니다. 가자마자 4학년으로 월반하는 딸에게 “이렇게 공부를 잘 하니 너는 판사가 되고도 남겠다.’며 훌쩍훌쩍 우는 어머니를 바라보던 딸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겠다는 생각을 했겠지요. 그 원초적인 꿈이 오늘의 임지나 선생님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뛰어난 학교 성적으로 여중, 여고를 장학생으로 학비 없이 공부를 마쳤습니다. 대학은 갈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이런저런 고생 끝에 대학을 마칩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을 하와이로 데려다 준 비행사 출신의 백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외국인과의 결혼에 노여움을 느낀 아버지가 양육비 오백만원을 내어놓고 한국을 떠나라는 말에 ‘내 인생이 어찌 오백만 원짜리란 말인가. 어찌 그것뿐이란 말인가. 나는, 그 오백만 원의 열배 아니 백배가 되고 싶었다.’ 며 슬픔을 삼키기도 합니다. 결국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하와이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서투른 영어와 낯 선 문화를 극복하고 어머니가 심어주신 꿈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부동산 회사의 사장으로서 두 아들의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성실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수필가로서 오늘 수필집 출판 기념회를 하게 되셨습니다.
<나 이제 가고있다> 수필집에 실린 선생님의 글은 성격 그대로 조금의 꾸밈이 없습니다. 힘들게 살아온 세월을 따뜻한 심성 안에서 녹이고 삭혀서 잘 익은 와인 같은 향기로 다시 살려내었습니다. 한 편 한 편 수필을 읽다보면 어느새 책장이 반을 훌쩍 넘기고 말만큼 문장이 세련되고 담백합니다. 그리고 재미있습니다.
이제부터 전개될 선생님의 인생 2막을 기대합니다. 한층 넓어진 미국생활의 경험과 깊어진 성찰로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수필을 마구마구 쏟아내어서 미주 수필 문단에 우뚝 서는 수필가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은 눈물과 회환이 없는, 밝고 건강한 세월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곧이어 제2, 제3의 수필집 <나 참 잘 살고 있다>라는 글도 기대하며 말을 맺습니다.
2017년 10월 20일 출판기념회에서
글 주인을 찾아드립니다.
그런데 이 서재는 와이리 텅 비었노~~~
주인은 어데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