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만 남은 사람

 

성민희

 

 

시어머니의 병세가 위중하다며 한국으로 나간 친구가 소식을 보냈다장례식을 치렀다는 거다슬퍼하고 위로하고여덟 명의 친구들이 카톡방에서 와글거렸는데 오늘은 난데없는 흑백 사진을 줄줄이 올라왔다.

 

칠판의 하얀 글자를 긴 막대기로 가리키는 선생님과 단정히 책상에 앉은 학생들세라복에 단발머리 여중생의 뒷모습머리를 살짝 뒤로 묶은 여고생 여럿이 팔짱을 낀 모습시어머니의 소녀시절이라고 한다교복 윗도리에 하얀 체육복 바지를 입고 정렬한 사진도 있다아래 부분에는 연도 표기와 함께 전교생 교련 기념이라는 투박한 글씨도 있다그 시절에도 교련 훈련이 있었나 보다단기 4282년이라고 하니 서기로는1949년이 되는 셈이다.

앳된 소녀가 아흔 살이 되기까지 살아온 골목 구석구석을 담은 사진이 얼마나 많을까노인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던데 그 큰 도서관의 기록을 모두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자식에게는 부담이겠구나 싶다.

 

몇 년 전이었다집을 옮겨 볼까하고 동네를 뒤지고 다녔다어느 날 등 뒤로 언덕을 끼고 앉은 고풍스런 이층집을 살피다가 마당 구석의 창고까지 열어보게 되었다그곳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풀장 장난감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형 흑백 사진이 한쪽 구석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멋진 신사와 금발의 여대생이 여러 사람의 박수를 받으며 악수를 하는 장면이 담긴대저택의 한쪽 벽 공간을 다 차지했음직한 크기의 패널이었다.

이 집 주인의 어머니가 대학생 때 찍은 사진인데요학교를 방문한 트루먼 대통령을 영접하는 광경이래요.” 감탄을 하는 나에게 부동산 에이전트가 말해 주었다부모님의 사별 후 집을 물려받은 아들이 가구는 모두 처분했지만 차마 거실에 걸린 이 사진은 어쩌지 못해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여자대학교의 대표로서 대통령을 맞이하는 영광은 남의 추억일지라도 되우 자랑스럽다그것은 집안의 가보가 되어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모든 사람의 찬탄과 부러움을 받았을 터인데 지금은 하얀 눈을 맞은 듯 먼지를 뒤집어 쓴 신세가 되어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대형 사진을 다시 떠올렸다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어머니 살아계실 때처럼 그대로 걸어두고 손자에 손자그 손자에 손자까지할머니증조할머니고조할머니라며 우러러보게 했을까혼자 킥 웃었다그건 아니다우리는 모두 개별자가 아닌가내 안의 격렬한 소리나 예민한 살갗의 느낌을 누가 나랑 똑같이 공감할 수 있을까내 손가락으로 그리는 V자를 비록 자식이라 할지라도 강요할 수는 없다나의 고통의 궤적이나 기쁨의 흔적은 육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는데 무슨 미련으로 여기저기 자국을 남길까떠나는 자는 앉은 자리를 스스로 치우고 갈 일이다결론을 내리고는 쓸쓸해했다.

 

이제 친구는 어머니가 남겨 두신 유품을 처리하느라 바쁠 거다옷과 가구는 기부하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거고 현금과 통장은 당연히 해낙낙하며 챙기겠지그런데 어머니 모습은 감히 어떻게 정리할까.

생각해 보니 풀고 가야 할 숙제가 생겼다언젠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도 어둑발이 내리는 시간이 올 거다그때는 다른 건 미처 못 하더라도 사진 정리는 꼭 해 주어야겠다묵은 앨범을 뒤적여 아이들 것은 골라 본인에게 나눠주고 우리 부부 사진은... 거기까지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202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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