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1_150735.jpg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열흘 동안 전혀 책상에 앉지도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모두 해결이 되니 수리점에 가져가야지 생각만 하고  답답한 느낌 없이 지냈다. 덕분에 감정의 폭이 깊고 넓어져 좋은 글을 쏟아낼 연말 연시를 그냥 흘려보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책장 구석자리에 세워져 있는 노트북 생각이 났다. 그게 있는데 왜 데스크탑만 생각했을까. 얼른 꺼내어서 뒷마당이 내다보이는 넓직한 응접실 테이블 위에 한 살림 차렸다. 모니터도 데스크탑의 것을 떼어와서 설치했다.

 

 오랜만에 자리를 펴고 앉으니 기분이 좋다. 마침 비도 출출 온다. 뒤 뜰을 바라보며 비처럼 촉촉한 글을 써야지 벼르지만 도무지 글이 써 지지가 않는다. 새해를 맞기 전 12월에 보던 비 하고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때는 뭔가 쓸쓸하고 아쉬운 마음에 글이 줄줄 나올 것 같았는데 달력이 새 것으로 바뀌고 나니 감정도 달라졌다. 새해에는 희망을 꿈을, 역동적인 글을 써야 할 것 같아 차분해지지가 않아 낑낑대기만 한다.

 

  다이닝 테이블과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나를 퇴근 하고 올 때마다 본 남편이 참다 못해 한마디 한다.

" 이 의자는 가끔 손님이 올 때만 앉는 것인데 그 큰 엉덩이로 하루종일 비비고 있으면 푹 내려앉잖아. 봐, 봐, 어? 벌써 푹 꺼졌네." 손으로 탈탈 의자를 턴다. 그러고는 페밀리 룸에 있는 튼튼한 의자를 밀고 온다. 무겁고 크고 둔한 엉덩이는 이런 튼튼한 의자에 앉아야하나 보다. 

  똑 같은 말이라도 어찌 이리 무드없이 할까. 속이야 어찌 되었건  "이 의자는 오래 앉아있기 불편하니까 편안하게 앉을 것으로 바꿔줄께" 하면 얼마나 좋아. 말 한마디로 정이 철썩 붙기도 하고 뚝뚝 떨어지기도 하는데 참말로 지혜가 없다. 이러니 내가 어찌 이뻐해주는 마음이 들겠냔 말이다. 이 남자도 왕자 대접 받기는 영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