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출출 내리는 며칠 전. 마켓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부부의 뒷모습을 보았다. 남자는 한 손에는 조금 무거운 듯한 봉지를,  다른 손으로는 우산을 받친 채 바쁘게 걸어가고 여자는 양 손에 작은 봉지 두 개를 들고 비를 맞으며 뒤따라 갔다. 남자는 트렁크 문을 열고 물건을 넣으면서도 우산은 머리 위에 잘 받쳤다.  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여자의 비닐봉지와 머리에서는 빗물이 줄줄 흘렀다. 남자는 말끔히 우산을 접으며 운전석에 타고 여자는 손으로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털털 털며 조수석으로 들어갔다.

 

   남편과 함께 비 오는 새벽을 달려왔다. 남편이 뒷좌석에서 우산을 꺼내어 펴는 동안 나는 차에서 나와 비를 맞으며  옆에 서 있었다. 우산을 펼친 남편이 다가와 비를 맞는 내 머리 위에 씌우자 며칠 전에 보았던 부부가 생각났다. 

"와아... 진짜 매너 없는 남자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자기는 전혀 그런 부류가 아닌 것 처럼 정색을 한다. "당신도 그랬을 걸?" 새벽기도 하러 교회에 들어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비위를 확 긁었다.  "엉? 내가 그렇게 잘 해 주는데도 그 정도로 생각하나?" 엄청 실망이 큰 얼굴이다. 화도 난 듯하다.

 

  자리에 앉으니 조금 미안하다. 경건하게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시간에 왜 하필 그  장면이 떠올랐을까.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려니 부부간에도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귀히 여기도록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남자들에게 세세한 나의 감정까지 챙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일게다.  행동으로  깨닫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걸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덜렁덜렁 나서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이 우산을 펴서 내 자리로 올 때까지 차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될 것을 뭐가 급하다고 후다닥 내려서 비를 맞았을까. 공주 대접을 받으려면 공주처럼 행동을 해야지 매사에 하는 짓은 무수리면서 공주 대접을 안 해 준다고 투덜대다니 어리석다. 가만.... 혹시? 나도, 며칠 전의 그 여자도 정말 무수리가 맞을지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