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썩! 하며 발바닥에 들러붙던 차가운 된장의 감촉이 떠오릅니다. 새벽 4시. 꼼짝 않고 누워 눈을 감고 있으니 잠이 다시 오기는커녕 마음이 천방지축 입니다. 봄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꽃씨처럼 날아가더니 부산시 수정동 내 유년의 집에까지 갔네요.  

 

부뚜막에 서서 까불다가 벌겋게 불이 붙은 연탄아궁이 무쇠 뚜껑을 콱 밟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프로그램이 입력된 기계가 자동으로 움직이듯 아버지는 나를 순식간에 안아들었습니다. 어느새 어머니도 된장을 퍼 와서 척하고 벌건 내 발바닥에 붙였습니다. 상처가 얼마나 쓰라렸던지 아팠던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출렁이는 아버지 등판의 감촉과, 동네 동일병원 유리창을 깨어져라 두드리던 음성만 기억납니다. 지금 계산을 해보니 그때 내 나이가 6살이었으니까 아버지는 서른 아홉 살이었고, 어머니는 서른 네 살이었네요. 그 때 벌써 다섯 아이의 아비였던 내 아버지는 정말 어른이었을까요? 

 

지금 서른다섯 살, 서른여섯 살인 내 딸과 사위는 아직도 철이 덜 든 아이 같은데요. 삼십 대에 일곱 식구를 거느린 가장이 되어 일흔 아홉까지 걸어오신 울 아버지. 어깨의 무게가 느껴져 가슴 한 쪽이 묵직해지는 새벽입니다.

(2014.02.25)

 

 

불 빛 / 정 호 승

 

때때로 과거에 환하게 불이 켜질 때가 있다 

처음엔 어두운 터널 끝에서 차차 밝아오다가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확 밝아오는 불빛처럼

과거에 환하게 불이 켜질 때가 있다 

특히 어두운 과거의 불행이 환하게 불이 켜져 

온 언덕을 뒤덮는 복숭아꽃처럼 불행이 눈부실 때가 있다 

봄밤의 거리에 내걸린 초파일 연등처럼 

내 과거의 불행에 붉은 등불에 걸릴 때 

그 등불에 눈물의 달빛이 반짝일 때

나는 밤의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숙인다

멀리 수평선을 오가는 배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등대가 환히 불을 밝히는 것처럼 

오늘 내 과거의 불행의 등불이 빛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살아갈수록 후회해야 할 일보다 감사해야 할 일이 더 많아

언젠가 만났던 과거불(過去佛)의 미소인가 

불행의 등불을 들고 길을 걸으면 인생이 다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