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과 깊이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이상은 김훈의 기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문학동네.2) 서문의 일부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현재의 나는 상처의 총합이리라.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내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던 글이다.

 

 김훈의 풍경과 상처는 현대수필의 진수를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필이 성취할 수 있는 문학성의 최고봉이리라. 그러나 풍경과 상처는 쉽게 읽히는 산문집이 아니다. 오히려 어렵다. 화려체이면서 만연체이기에 호흡이 길므로, 집중에 집중을 해야만 읽어 낼 수 있는 글이다. 탁월하게 구사되는 어휘력과 현란한 묘사는 가히 어지러울 지경이다.

 문학성이란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말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새로움깊이. ,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 부여,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를 말한다. 예술은 기존의 것을 답습하지 않기에 늘 새로워야 한다. 그래서 창작은 고통스럽다. 거기에 깊은 의미까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창작은 어렵다.

 

 “꽃은 식물의 성기다. 여름의 꽃들은 그 치매한 천진성으로, 세상을 향하여 저들의 향기로운 성기를 자지러지게 벌린다. 그 천진성이 버거워 여름의 꽃밭에서 나는 늘 몸 둘 곳 없어 했다.”(165)

 꽃이란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의미 부여한,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이렇게 도발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일몰의 동해에서 수면에 깔린 빛들은 소멸해 가는 시간의 가루들이다.”(37)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와 파동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내(광전효과)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빛이 작디작은 가루(입자)와 에너지(파동)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문학적으로 빛은 소멸해 가는 시간의 가루다.

 이 또한 빛에 대한 얼마나 빛나는 새로운 해석이고 의미 부여인가. 이런 문장을 만나는 날이면 밤새 설레어 잠 못 이룬다.

 

 대나무를 보고 악기와 무기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은, 작가의 깊은 통찰력과 사유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피리 죽창, 악기와 무기는 꿈과 욕망의 양쪽 극한이다. 겨울 수북의 대숲에서 나는 악기의 꿈과 무기의 꿈이, 선율의 혁명의 꿈이, 한데 합쳐져 오직 거대한 침묵으로 눈을 맞고 있는 장관을 보았다. 악기의 꿈과 무기의 꿈은 결국 다르지 않다. 안중근의 총과 우륵의 가야금은 결국 같은 것이다. 악기는 시간의 내용을 변화시키고 무기는 세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관여한다. 악기의 꿈은 무기 속에서 완성되고 무기의 꿈은 악기 속에서 완성된다.”(100)

 

 김훈 기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는 집요하게 탐미적이고, 집요하게 지적이고, 집요하게 모던하다.

 

 새로움과 깊이는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 깊이가 없는 새로움은 언어유희며, 새로움이 없는 깊이는 허풍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문학성(예술성)의 생명은 새로움과 깊이다.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의미 부여가 없고,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가 없는, 일상의 소박한 나열은 잘 쓴 일기 정도라 할 수 있다. , 작품으로서 예술성(문학성)을 논하기엔 다소 아쉽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