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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와 헤밍웨이

                                                                          이현숙

 

 

  넘실거리는 바다를 양옆으로 가르며 난 길을 달린다. 2차선 도로가 길게 뻗어 한 발자국 발을 잘못 디디면 바다로 빠질 듯하다. 군데군데 다리의 난간에 낚시줄을 드리운 사람들이 보인다. 플로리다 본토를 벗어나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아 만든 ‘바다 위 하이웨이(Overseas Highway)’는 키웨스트 섬까지 이어진다. 미 대륙의 남쪽 끝으로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 –1961)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열대수로 우거진 정원 속에 연두빛 창을 단 2층의 저택이 보인다. 붉은 벽돌 담장에 <Ernest Hemingway Home>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 집은 1851년 해양 건축가이자, 난파선 구조원이던 에이샤 티프트에 의해 지어졌다. 헤밍웨이가 이집으로 이사를 한 것은 작가인 존 도스 페소스John Roderigo Dos Passos (1896~1970) 의 편지 때문이다. ‘키웨스트에 오니 꿈속을 떠다니는 것 같다’는 내용이 당시 파리에 살며 미국에 돌아오고 싶어 하던 헤밍웨이의 두 번째 아내인 폴린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의 삼촌 거스Gus가 이집을 선물해 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거실에 들어섰다. <노인과 바다>에 대한 것들로 가득하다. 벽에는 헤밍웨이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가 그려진 커다란 석판화가 걸려 있다. 그레고리오는 20년간 헤밍웨이의 낚시보트인 필라(Pilar)호의 요리사 겸 친구였다. 그는 <노인과 바다>의 모델이 된 사람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는 상남자로 살려고 했다. 전쟁터에서는 종군기자로, 아프리카에서는 큰 짐승을 사냥해 그 앞에서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스페인에서는 투우에 빠지고, 알프스에서는 스키를 즐겼다. 멕시코 만에서는 자신이 낚아 올린 커다란 물고기 앞에서 으시대며 포즈를 취하기를 좋아했다. 연예인보다 더 유명했던 그의 행적들이 건물 안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2층 침실로 올라갔다. 스페인 수도원의 문으로 쓰였던 것을 침대 헤드보드로 사용했단다. 둘째부인 폴린과 함께 그가 사용했을 침대 위에 고양이가 몸을 돌돌 말고 누워있다. 관람객들에게 관심 없다는 듯 여유롭다. 파리 시절 친구였던 피카소가 선물한 고양이 조각이 놓여 있다. 밖으로 나와 이층을  둘러싸고 있는 베란다에서 정원을 내려다본다. 열대 식물들이 잘 가꾸어져 있는 3에이커의 넓은 곳에서는 주말이면 결혼식이 열리고 예약도 밀려 있단다. 아래층 거실에 걸려 있던 네명의 부인들 사진이 떠오른다.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을 한 사람의 집에서 결혼식을 치루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있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친구였던 <위대한 게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가 대작을 내놓을 때마다 새로운 부인을 필요로 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아내 폴린 파이퍼와의 결혼생활 중에 <무기여 잘 있거라(1929)>를 내놨고, 세 번째 부인 말타 겔혼과 살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를 출간했으며, 네 번째 아내 메리 웰시와 결혼한 뒤 <노인과 바다(1951>)를 썼다. 한 여인에게 머물 수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의 집필실이 궁금해서 마음이 급해졌다. 베란다에 연결된 계단을 내려와 서재로 쓰던 이층 별채로 갔다. 전에는 침실에서 서재까지 쇠로 만든 난간 다리가 놓여 있었단다. 헤밍웨이는 전날 밤 술을 많이 마시고도 반드시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썼는데 이 브릿지를 통해 침실에서 바로 서재로 건너가기 위해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방 안은 창작을 향한 그의 열정이 배어 있는 듯하다. 각국에서 가져온 기념품들과 그가 잡아 올린 청새치의 박제들 속에서 타자기가 나를 부른다. 유난히 아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 오후의 죽음> 등을 썼다지. 글을 쓰는 그를 그려본다. 쿠바의 시가Cigar 제조회사 사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의자에 그가 앉아 우리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 새로운 소설을 시작했는데 잘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서 작은 오렌지 껍질을 쥐어짜 불 길 언저리에 떨어트려 푸른 불꽃이 타닥타닥 타오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걱정하지마! 항상 글을 써 왔으니 지금도 쓰게 될 거야. 그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써내려가기만 하면 돼. 내가 알고 있는 진실한 문장 하나면 돼.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내가 알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진실한 문장 하나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

 

그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써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내가 알고 있는 진실한 문장 하나면 족하다는 그의 말을 되새긴다.

 

  방문객들에 밀려 좁은 서재를 나왔다.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오니 키웨스트에서 가정집으로는 처음 만들었다는 길이 20m의 수영장이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 돌아온 후 2만불의 수영장 건축비 명세서를 보고 놀랐단다. 헤밍웨이는 아내인 폴린에게 내 마지막 1센트까지 가져가라며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던져 주었다고 한다. 그때 그 페니가 수영장 바닥에 기념물로 남아있다.

이집은 주인인 헤밍웨이보다 고양이에 대한 것이 더 많다. 정원에는 고양이를 위한 분수대가 놓여 있다. 바닥에 놓인 사각형의 물통은 그가 단골 슬라피 조 Sloppy Joe's Bar식당 화장실에서 떼어온 남성용 소변기다. 아내 폴린은 펄쩍 뛰었지만 헤밍웨이가 굽히지 않자 타일을 붙이는 것으로 타협을 했단다. 유전자를 통해 후손들에게 귀띔을 해주는지 고양이들은 소변기에 고여 있는 물은 절대 마시지 않고 흘러내리는 물만 마신다고 한다.

 

  집안이며 정원에도 그들은 어슬렁어슬렁 시찰하듯 다닌다. 키우면 행운이 온다는 앞 발가락이 6개인 고양이들이 많은데 마치 벙어리장갑을 낀 것 같이 두툼한 앞발을 지녔다. 점성술을 믿었던 헤밍웨이는 낚시하러 바다에 나갈 때 이 고양이들을 배에 태우고 다녔다고 한다. 고양이 묘지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말년의 그는 고양이에게 위스키를 섞은 우유를 주었다고 한다. 너도 취하고 나도 취하자. 맨 정신으로 지낼 수가 없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에 축사를 부탁받은 그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며 고통스러워했다. <노인과 바다>의 원고를 80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으며 완성했던 그다. 벽에 판지를 붙여 놓고 매일 몇 단어를 쓰는지 기록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부분은 39번이나 다시 고쳤단다.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이 새겨진 금속성 클립에서 한 번에 한 장씩 종이를 꺼내 썼다. 왜냐고 물으니 ‘제대로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걸작을 내놓던 그는 전기충격요법으로 정신치료를 받으며 멍청이가 되어버렸다. 기억과 추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를 성도착증 환자나 허풍장이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누구도 따라가질 못할 것이다. 결국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으로 그 속박에서 벗어난다. 아니 패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죽을지 모르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노인과 바다에서 말했던 그다.

 

  주인이 떠난 집은 쓸쓸했다. 많은 관람객들과 가이드로 북적거렸지만 허전한 마음을 추스르며 헤밍웨이의 집에서 나와 바로 길 건너편의 등대로 간다. 헤밍웨이가 Sloppy Joe's Bar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깜박이는 등댓불 빛을 따라 집을 찾아왔다고 한다. 고불고불 돌아가는 계단을 오르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깊게 숨을 들이 마신다.

 

  날씨가 좋을 때 등대에서는 그가 그리워하던 쿠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바다를 보며 밥벌이가 아닌, 진실한 글을 쓰길 원했던 헤밍웨이를 좋아한다. 아는 것만을 쓴다며 현장을 누비며 발로 뛰는 작품을 썼다. 그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미문학사의 등대 불빛이 되어 주었다.

 

  바닷바람이 비릿함을 남기고 달려간다. 집에 돌아가면 <노인과 바다> 다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