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데이트

                                             사격장에서- 2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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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들과 테이트 한다. 장소는 실마에 있는 엔젤레스 실외 사격장이다. 산길을 돌아 올라가니 넓은 주차장과 길게 늘어선 사격장이 있다. 산줄기를 따라 초록빛이 만발해 피크닉을 온 것 같다. 아들과 나 그리고 남편은 한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담요를 펴고 그 위에 준비물을 올려놓았다. 라이플Rifle 세 자루와 권총 둘, 그리고 총알이 담긴 상자들.

오늘을 위해 일주일 전에 예습(?)을 했다. 실제로 총을 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남편과 함께 실내 사격장에 갔었다. 13발의 총알 중, 겨우 네 개만 표적의 가장자리를 맞춘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다행히 사진을 보니 사격하는 폼은 그럴듯해 핸드폰에 저장해 지인들에게 보여 준다.

그날 이후 남편은 나를 ‘애니 오클리(Annie Oakley)’라 부른다. 카우보이 시대인 19세기말의 여자 명사수. 공중에서 떨어지는 카드가 땅에 닿기도 전에 5~ 6개의 구멍을 뚫어 반으로 자를 수 있는 실력이라나. 여성도 총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해 총기 소지를 합법화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대변자라고도 한다. ‘애니 오클리’라고 부르니 사람들은 남편에게 조심하라며 눈을 찡긋한다.

남편과 아들은 총알을 장전하고, 라이플 밑에 받침대를 설치한다. 두 남자는 준비해 온 총을 서로 바꾸어 쏘며 장단점을 논한다. 귀마개를 했기에 머리를 거의 맞댄 모습이 보기가 좋다.

아들이 나를 부른다. 엄마 차례란다. 여기까지 와서 거부하면 안 되겠지. 이민 초기에 리커 스토어를 운영하며 권총 강도를 3번이나 당했다. 지난번 남편과 실내 사격장을 다녀온 후, 그 기억이 떠올라 다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총을 좋아하는 줄 알고 있다. 총으로 인해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데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찬물 끼얹는 격이 아닌가.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 인터넷에서 총 이름을 익히기도 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 생각이 많다. ‘왜 하필 총이야. 다른 취미 활동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나마 사냥이 아니고 사격이니 다행이라 생각해야지’

 

자신의 라이플을 내 손에 쥐어주는 아들. 영화 ‘007 시리즈 Skyfall’에서 여자 주인공이 달리는 기차 위에서 격투를 벌이는 제임스 본드의 상대를 쏘았던 총과 같은 종류란다. 나를 의자에 앉히더니 어깨에 총대를 끼우는 법부터 총에 몸을 밀착시키는 방법까지 설명해 준다. 등 뒤에 서 있는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걱정되나 보다. 과장되게 행동하는 내 몸짓 뒤에 숨어있는 복잡한 내 정서를 감지하리라.

어려서부터 큰 아들, 앤디는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영어가 부족한 부모로 인해 초등학교 때부터 따라다니며 통역을 했다. 작은 아들이 아동병원에서 수술을 할 때도 그는 옆에 있어 주었다. 의사의 질문을 잘못 이해하고 엉뚱한 답을 하면 내 손을 잡아 당겨 신호를 주고는 했다.

전 남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도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느 한편의 손도 들어 줄 수 없는 그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스스로의 감정도 추스르기 힘들었을 터인데도 내 넋두리를 묵묵히 들어 주었다. 우울해 보이면 가끔 ‘앤디표 라면’을 끓여 위로를 해주던 아들이다.

아직도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한 동생을 데리고 산다.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생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늦추지 말라고 했다. 여자 친구도 있는데 이제는 네 인생을 살아야지.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단다. 할머니라고 불리기에는 나도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며 농담처럼 건넸지만 가슴이 아렸다. 상처가 얼마나 크면 그런 생각을 할까.

 

등 뒤에 서 있는 아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든든하다. 걱정 말라고 등을 다독여 주는 듯하다. 언제나 엄마의 후원자라고. 마음을 살짝 돌린다. 그래. 총은 그저 쏘라고 만들어진 물건이지. 아들과 데이트를 하는데 살짝 이용하는 것뿐이야. 숨을 고른다. 방아쇠를 당기니 ‘핑’ 소리가 나고 멀리 있는 표적이 살짝 흔들린다. 맞혔나보다.

잘 했다고 좋아하는 앤디에게 묻는다. 내가 누구냐고. 당연한 질문을 왜하느냐는 얼굴표정이다.

“나는 애니 오클리야.”

남편과 아들이 큰소리로 웃는다. 건너편 산허리를 치고 돌아온 메아리도 따라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