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어머니 스토우 여사
-해리엇 비처 스토우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하는데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아버지는 대표적인 노예찬성론자인 리만 비처이다. 그의 딸인데도 그녀는 노예 해방을 위해 앞장섰다. 1852년에 발표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은 남북 전쟁이 일어나게 한 요인이다. 그녀는 흑인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 '흑인의 어머니'로 불렸다.
코네티컷 주의 옥스퍼드에 있는 해리엇 비처 스토어가 살던 집에 왔다. 그녀의 가족이 23년간 살았던 곳이다. 헤리엇 비처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 센터라는 팻말에 불타오르는 횃불이 새겨져 있다. 1832년 신학대학의 총장이 된 아버지를 따라 오하오주의 신시내티로 이사하고 거기서 신학대학 교수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쌍둥이를 포함 일곱 자녀를 낳지만, 막내아들 사무엘이 18개월에 세상을 떠나자 그 상실과 아픔을 계기로 자식을 빼앗기는 어미의 심정을 절감하게 된다.
그녀의 집은 아담한 2층 건물이다. 마크 트웨인의 옆집인데 트웨인의 집이 웅장하고 화려하다면 스토우 부인의 집은 마치 수채화 한 점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초록색 잎이 풍성한 나무들과 어울려 회색에 가까운 연둣빛을 띤 집은 안정적이고 포근한 분위기다. 스토우 부인은 작가이자 사회개혁가이며 화가다. 19세기 뉴잉글랜드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 정원 가꾸기가 모든 가정의 주요 관심사였다고 하니 집 주위의 목련 나무는 그녀가 심었는지도 모른다.
문을 열면 쿠키 굽는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먼저 반겨줄 것 같다. 이웃이었던 마크 트웨인의 딸들이 자주 놀러 와 두 집안이 친하게 지내서 턱수염이 더부룩한 스토우 부인의 남편을 '산타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마크 트웨인의 아내 올리비아와 하트포드 예술학교 창설에 참여하는 등 지역 여성들과 활발히 활동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 벽면에 유명 인사들의 사진과 그들이 스토우 부인에게 남긴 말들이 적혀 있다. 에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당신이 바로 이 위대한 전쟁을 일으킨 작은 부인이군요. (Your are the little woman that starts this great war.)"라고 말했는데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책벌레였던 링컨은 그녀의 책을 여러 번 읽었고, 노예제도의 심각성에 대해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통령의 말에 “내가 그 소설을 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라고 답했단다. 체격이 작았던 스토우 부인이 9척 장신의 링컨이 나란히 서서 그를 한참 올려다보며 말했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대통령과 유쾌한 인터뷰를 했어요. (I had a real funny interview with the President.)라고 했다며 안내자는 말했다. 루즈벨트 대통령과 로라 부시 전 영부인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도 메시지를 남겼다. 그녀의 아버지가 “해리엇은 대단한 천재다. 만약 아들이었다면 100불을 주었을 것이다.”라고 한 말이 액자에 걸려 있다. 당시의 백 불은 현재 2,500불 정도라고 하니 어린아이에게 큰돈인데 당시 미국에도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나 보다.
거실에 그녀의 초상화가 있다. 그리 밉지도 예쁘지도 않은 평범해 보이지만, 다부진 입매와 오똑한 코, 단정한 모습이 우아하다. 피아노 위에는 꽃무늬의 찻잔이 놓여 있다. 마치 그녀가 차를 마시며 피아노를 연주하다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다. 내 키를 훌쩍 뛰어넘은 큰 괘종시계가 서 있고 그 앞에 작은 테이블이 있다. 가끔 지방 신문이나 잡지에 소품을 써 보냈지만,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다. 평소 노예 해방주의자였던 그녀는 노예시장에서 가족이 뿔뿔이 팔려 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그즈음에 스토우부인은 ≪조시어 핸슨의 삶(The Life of Josiah Henson)≫을 읽었다. 노예 조시어는 글을 모르기에 구술을 했고 노예 해방자인 사무엘 엘리엇이 받아 적은 책이다. 그녀가 자극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글을 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단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노예 매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 스토우 부인은 노예제도에 관한 소설을 써서 반 노예제도 주간지의 편집장에게 보냈다. 편집장은 소설을 출간할 권리를 가지는 대가로 300 달러를 지불했고, 10개월 동안 「톰 아저씨의 오두막」 또는 「비천한 자들의 삶 Life Among the Lowly」은 40회로 나뉘어 연재됐다. 1852년, 보스턴의 한 출판사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책으로 출간하자 베스트셀러가 되 첫 해에만 30만 권이 팔렸고, 1857년까지는 모두 50만 권이 팔렸다.
그 옆에 미국과 영국에서 출판된 초판본(1852년)은 푸른색 표지에 채찍질하는 주인과 엎드려서 옷이 찢어지도록 매를 맞는 노예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어설픈 표지의 그림이기에 내용이 더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초판본부터 4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된 판본들을 보관하고 있는 장식장이 있었다. 저자인 솔로몬이 스토우 부인에게 헌정한 ≪노예 12년≫ 책도 있다. 소설은 아직 못 읽었지만, 영화로 노예들의 비참한 일상을 보고 몸서리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건너편 창가로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는데 그곳에서 연극을 하기도 했단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침실이다. 마름모꼴 모양의 벽지가 강하면서 질서가 있어 보였다. 그 벽지 위에 나뭇가지를 꺾어 이리저리 얽혀 맨 세 개의 나무 액자 안에 그녀가 그린 풍경화가 있다. 집안은 그녀의 성격답게 깔끔하고 어릴 적부터 청교도적인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장식들은 소박했다. 안내자가 이끄는 대로 아래층의 큰방으로 내려왔다. 열 개가 넘을 듯한 의자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놓여 있다. 안내자인 백인 할머니가 교사 생활을 했던 스토우 부인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겼다며 편안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자고 했다.
“당신이 제일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읽은 책은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은 읽어 보셨나요? 만약 노예라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 떼어져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팔려 간다는 걸 상상해본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다 아시겠지만” 하며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의 줄거리를 들려주었다.
노예인 톰은 뉴올리언스로 팔려 가는 증기선에서 소녀 에바(Eva)가 물에 빠진 것을 구출해준다. 그녀의 아버지인 오거스틴 세인트 클레어 집에서 마부로 일하게 되고 좋은 주인들로 인해 글도 배우며 안정된 시간을 보냈다. 에바는 노예들의 처지를 아파했기에, 결핵으로 죽어갈 때 아버지에게 톰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에바가 죽자 노예들을 짐승처럼 부리던 리그리에게 팔려 간다. 그의 하수인 흑인 삼보로 인해 처참한 생활을 하던 톰은 리그리의 노리개였던 캐시의 탈출을 도왔다는 누명을 쓰고 가혹한 폭행을 당한다. 악마같은 노예주 레글리에게 구타당한 톰이 "비록 나의 몸은 당신에게 팔려 왔지만, 내 영혼만은 하느님의 것입니다."라고 외친 선언은 노예제에 대한 반대하는 작품의 성격을 잘 설명해준다. 그 후 치료도 못 받고 방치되어 있던 톰은 뒤늦게 그를 되찾으러 온 셀비의 아들 품에 안겨 죽는다. 톰의 시체를 옛집으로 데려오고 셀비는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내용이다.
스토우 부인은 실제로도 흑인 하녀를 남편과 오빠 헨리 워드와 함께 마차에 태워 오하이오 오지의 농장으로 피신시켜 주었단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무거운 짐이 등에 얹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뿐 아니라 둘러 얹은 열 명 정도의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시계를 보더니 버스가 떠날 시간이라고 하자 정적을 깨고 모두 슬그머니 일어섰다. 다행이다.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녀의 집을 나오며 서재 쪽을 보니 책상 위에 작은 저울이 놓여 있다.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섰다. 그녀는 노예 해방을 위한 글을 쓰다가 문장이 막히면 저 저울을 올려다보며 중심을 잡지 않았을까. 피부색으로 사람의 무게를 힘을 저울질할 수 없다는 것을,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을까. 책상 주위에 마치 그녀가 꾸겨버린 듯한 종이 몇 장 널려 있다. 짙은 색의 잉크웰이 그녀의 육필 원고가 쓰인 종이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다. 이 소설 출간되자 노예제도를 찬성하던 남부에서는 금서가 되었단다. 노예제도 폐지를 놓고 미국 남부와 북부간의 대립이 첨예화되었고, 남북전쟁이 발발해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문에 서명하게 되었다.
이 책이 출판되고 스토우 부인은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초청을 받아 강연을 다녔다.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모은 예술작품들도 많았지만,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던 스토우 부인이 직접 그린 그림들도 꽤 있다. 그리스도 정신에 따라 노예 제도의 철폐를 주장하고, 실제로 도망한 노예를 숨겨주거나 도피시켜 주는 등의 사회적 활동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보수적인 백인들의 본거지에서,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내기가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아직도 형태는 다르지만, 곳곳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향한 인종차별이 알게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피부색뿐 아니라 거주 환경이나 경제적 요건 등으로 서로 금을 긋고 무시하는 행위로 상처를 준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은 없는 법인데. 이 시대의 정의를 고발할 진정한 작가가, 스토우 부인처럼 진정한 용기로 풀어낼 글쟁이가 필요하다.
한 작가의 작품이 인류의 역사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것이 바로 Pen의 힘인가 보다.
정말 유서깊은 곳을 다녀왔네요. 문학가들이 살던 곳, 이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의 체취가 묻어 있는 멋진 곳, 그곳으로 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