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품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
낮은 담장과 가파르고 긴 박공 지붕의 건물은 땅에 발을 디딘 솔개의 모습처럼 보였다. 옆의 정원에는 흰 라일락 나무가 가득하고 잘 다듬어진 잔디가 꽃향기에 취한 듯 고개를 바짝 들고 있다. 정원을 지나니 희끗희끗한 낮은 벽돌과 짙은 색의 나무 벽이 잘 어우러졌다.
벽의 중간중간 널찍한 유리창에 셀 수 없는 마름모꼴이 질서 정연하게 들어찼고, 다른 창에는 작은 초록빛 네모가 길게 그어진 직선에 연결되어 둥둥 더 있다. 회랑을 따라 기둥에는 청동으로 된 두 마리의 새 조각품이 암호를 새긴 듯한 두루마리 편지지를 사이에 두고 책과 나무를 머리에 이고 서 있다, 유난히 가늘고 긴 다리와 달리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공격할 것 같은 매서운 눈매다. 지붕 위 코너에는 남녀가 부둥켜안은 조형물이 황톳빛을 띠고 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집과 스튜디오’라는 명패가 보였다. 그는 70년 동안 769개의 건물을 지으며 많은 이들의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디자인을 소매를 흔들어 빼냈다는 질시 섞인 비아냥을 들었다. 본인은 나라를 위해 한 일들이고 자신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라며. 자기과시에 빠져 살았다. 표현이 극과 극이다. 건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그의 폭포 안에 지은 낙수 장(Falling Water)과 건물 전체가 경사면을 이용한, 계단이 없는 나선형 모양으로 설계된 구겐하임 미술관의 사진은 유명해 몇 번 봤기에 기억이 난다.
그의 집과 작업실인 스튜디오는 나란히 붙어있다. 외관은 물론이고 바닥과 벽면 천장, 창문 등 세세한 실내장식과 가구까지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100년 전에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고 독특하다. 그가 건축에 첫발을 디딘 것은 시카고의 설리번 건축 사무소에서 조수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다. 실력을 인정받으며 열심히 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다. 신혼집을 마련하려고 설리번에게 5년 치의 월급을 선납 받고 개인적으로 5,000불을 빌려 그가 창시한 대초원 양식(Prairie Style)으로 건물을 지었다. 바로 이 집이다. 주위 유럽풍의 수직적인 빅토리안 스타일의 주택 양식을 버리고 수평적인 주택의 시작이었다.
유리창과 조명이 눈에 띠었다. 천장에서 길게 내려와 삼각형의 갓을 쓴 초록빛 등은 풀잎요정이 살포시 앉은 듯 했다. 그는 평소 에머슨과 휘트먼의 자연론을 좋아했는데 휘트먼의 풀잎을 등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특히 에머슨의 “맨땅 위에 서서, 나는 유쾌한 공기로 머리를 씻고 무한한 공간 속으로 올라가며 비천한 이기심은 사라진다, 채워지지 않는 영원불멸의 아름다움의 애호가가 된다”라는 말을 좋아했다. 에머슨이 “자연의 작용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하다. 그래도 그것은 돈다. 밤에 달과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멈추어 있고 달과 별은 서둘러 가는 것 같다”라고 했는데 그 말을 따른 것인지 천장 중앙의 크고 둥근 조명은 해, 주방의 은은한 조명은 달이라고 불렀단다. 햇빛과 인공조명을 적절히 배합해 포근하고 안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식탁 의자는 등받이가 내 키만큼 올라와서 낯설다. 거실과 주방에 벽을 설치하지 않아서 그렇게 프라이버시와 안락함을 주려고 했다는데 내 눈에는 어색하고 편해보이질 않는다. 식탁 위를 비추는 등은 식탁 크기의 나무판에 조각해서 그 안에 조명을 설치한 것이 멋있다. 인공의 빛이 유리를 거치며 부드럽게 걸러진 느낌이랄까. 식탁과 바닥 그리고 의자는 나무의 자연스러운 결과 색을 살려 포근했다.
그는 집을 지을 때 거실 중간에 벽난로를 설치하여 입구와 거실 공간을 자연스럽게 분리했는데 벽난로에 둥근 벽돌이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동양풍을 즐겼던 그의 흔적이다. 벽난로 양 옆으로 한 사람이 앉을 정도의 연둣빛 의자 마주 보며 놓여 있다. 오붓하게 비밀이야기 나누기에 딱 좋은 장소다.
벽난로 위에 <진리가 살아 있다> <친구여! 이 벽난로 주위에서는 남을 헐뜯지 말아라.>라는 문구가 있다. 그에 대한 세상의 평판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을 알아서일까. 설리번의 융자금과 초과 수당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는 항상 돈이 부족했다. 빚을 갚고 여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라이트는 회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적어도 9개의 주택 건축 의뢰를 받았다. 계약을 어긴 것이다.
그는 쪼들리는 재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빚을 내어 비싼 옷을 입고 고급 자동차를 몰면서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애인과 함께 버젓이 고향인 위스콘신 스프링 그린에 탈리에신이라고 불리는 개인주택 겸 작업실을 지었다. 관리인이 그녀와 그녀의 두 자녀 그리고 손님 4명을 모조리 살해하고 집을 불살라 버리는 끔찍한 비극으로 세상을 놀래켰다. 또 자신의 나이와 학력을 스스로 변조하는 과시욕은 주위의 친구들을 떠나게 했는지 모른다.
자식을 위해 꾸민 놀이방을 보며 그의 자식 사랑을 느꼈다. 창문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계해 아이들이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둥근 통 모양의 천장과 줄줄이 붙은 파란 색 유리창에서 빛이 들어와 환했다. 아마도 하늘의 모양과 색을 표현했나 보다. 유리창마다 네모와 세모 그리고 원이 연결된 채 무지갯빛을 담아 햇볕을 받아들였다. 빛의 강도에 따라 색의 표정도 바뀐다. 벽을 따라 띠를 두르듯 하얀 조각상들이 운동하는 모습인지 움직임이 각기 다 다르다. 방 끝에 있는 벽난로 위에는 아라비안나이트 내용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호리병에서 나온 지니가 일본 장군의 투구 비슷한 것을 쓰고 있어서인지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듯해 한참을 올려다봤다. 아이들에게는 꿈과 환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가 건축가가 된 것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가 이미 결정해 버렸다고 했다. 어머니 애나 로이드 라이트는 장남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커서 아름다운 건물들을 지을 것이라며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낸 영국 성당들의 판화로 아기 방을 꾸몄다. 만국 박람회에서 프리드리히 프뢰벨이 개발한 교육용 블럭을 보고는 아들에게 사주었다. 프랭크는 오랜 기간 이 매끈한 단풍나무 세트를 가지고 놀았는데 훗날 그 감촉이 손가락을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가 삼각형과 바람개비 그리고 네모와 세모 모양을 즐겨 사용한 이유가 있다.
아버지가 치는 바흐와 베토벤의 피아노소리를 듣고 자라서 음악을 작곡하는 방식과 건물을 설계하는 방식을 비교하며 ‘심포니는 소리의 건축이라고 했다. 그의 사무실에 베토벤의 청동 반신상이 놓여 있는 것이 이해됐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자식들에게 주입식 배경을 심어주려고 한 것일까. 그 영향 때문인지 프랭크의 아들 존도 건축가다.
테이블 위에는 그가 그리다만 설계도면이 반쯤 말린 채 놓여 있다. 둥근 지붕으로부터 내려진 쇠사슬이 이층과 보를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이 없이 건물을 지탱해 주는 방식이란다. 집 천체의 자연 친화적인 설계와 달라서 낯설었다. 무슨 의미일까.
선물센터에 그의 대표작인 낙수 장과 구겐하임 미술관의 모습이 파스텔 색조로 그려져 있다. 그가 수없이 그려낸 청사진 복사본이 그림엽서로 팔리고 있다. 그가 창조해낸 많은 건물이 책 속에 또 그림 안에 있다. 건축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주변의 자연적 환경과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집이 그렇다.
그가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자신의 내적 성찰로 빚어낸 상상력을 건물로 형상화했고 공간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예술로 끌어올렸다. 그 건물들이 그의 이름을 달고 기념비처럼 곳곳에 살아 있다. 그는 창조자다. 태평양을 여러 차례 건너며 일본에 건설한 제국호텔은 엄숙하고 험악할 정도의 장엄한 벽돌과 화강암 덩어리 또 동화의 나라와 공포의 방이라는 평을 들었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이 관동지진을 이겨냈기에 '호텔은 귀하의 천재성의 기념비처럼 피해를 당하지 않고 우뚝 서 있음‘ 전보를 받으므로 그의 능력을 증명했다.
그의 스튜디오 와서 보니 고개가 끄떡여진다. 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현대 건축의 제왕이라고 부르는지를. 햇빛을 받아 연둣빛 유리창의 마름모꼴이 반짝하며 작은 별처럼 빛났다. 유리창을 통해 올려다본 하늘은 무지개를 피어 올린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에이다 루이즈 헉스터블 지음/이종인 옮김/을유(20080/46~47쪽
자연/랄프왈도 에머슨지음/서동석 옮김/은행나무(2019)/16쪽
자연/랄프왈도 에머슨지음/서동석 옮김/은행나무(2019)/185쪽
현대 건축을 바꾼 두 거장/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VS 미스 반 데어 로에/천장환 지음/시공아트/18~19쪽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 했는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있었군요. 자세한 묘사로 그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