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에서 만난 그 남자


   그 사람이 보고 싶다.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문득문득 그 남자의 너털웃음을 대책 없이 그리워하신다. 잠깐 본 사람. 힐끗 스쳐간 사람. 허공에 그려진 그 남자가 이제는 어머니의 고향 나고야가 된 것일까.

  그는 멜빵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길바닥에 다리를 펴고 앉은 어머니 곁에 철퍼덕 주저앉으며, 서툰 발음으로 마치 오랜만에 돌아온 손자처럼 ‘할머니’라 불렀다. 어머니는 팔랑팔랑 치맛자락 날리며 고무줄 뛰던 유년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어딘가에서 튀어 나올 것 같은 옛 동네에서 세월을 훌쩍 건너뛰고 할머니라는 호칭을 들었다.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어머니의 고향 나고야의 좁은 골목에서.  


  동네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면서도 어머니는 어릴 적 살던 빨간 대문 집을 이미 두 시간째 뱅뱅 찾고 계셨다. 주소는 분명히 거기인데. 두레상에 식구들이 둘러앉았던 그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네를 지나가는 강 가장자리 여기쯤에서 너희 할아버지가 물지게를 지고 오셨는데. 저기는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곳인데. 허공에다 손가락을 가리키며 기억을 하나 둘 끄집어내시던 어머니는 그만 길거리에 부스스 앉았다. 괜히 왔나보다. 아무 것도 없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구나. 내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던 때였다. 그 남자가 나타났다.
  어린 시절의 할머니가 그립다는 그와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이 사라져 당황스런 어머니가 마주보고 앉았다. 어머니에게 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60년 전의 사람이었고 그에게 어머니는 사라진 혈통의 부활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어머니는 안부를 묻는다. 부친은 살아계시고? 돌아가셨죠. 일본은 언제 들어왔노? 할아버지가 소아마비 아버지를 고치려고 한 살 된 아버지를 안고 들어오셨어요. 그러면 자네는 여기서 태어났겠네? 예. 그런데 한국말 참 잘 한다. 우리 할머니와 살았으니까요. 지금 뭐하고 사노? 노가다하고 삽니다. 노가다? 아이고. 공부 좀 열심히 하지.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내가 킥킥 웃었다. 남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머니는 정신을 조금 차리신 듯 가께 우동을 파는 곳이 아직 있느냐고 물었다. 일본에 도착한 후 부터 줄곧 우동 가게를 찾는다는 나의 말에 남자는 정통 가께 우동 집을 알고 있다며 일본 할머니가 평생 운영해 온 식당으로 모시겠다고 나섰다. 가던 길이 바쁠 텐데 사양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는 우리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한 듯 차를 가지고 오겠다며 벌떡 일어났다. 팔을 타고 흘러내린 멜빵을 바쁘게 추켜올리며 왔던 길을 도로 막 뛰어갔다. 어지럽다던 어머니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남자가 뛰어간 쪽을 하염없이 쳐다보셨다.
  털털 거리는 고물차가 왔다. 페인트칠이 가뭇가뭇 벗겨진 곳에서 햇살이 가볍게 튀어 올랐다.  훌쩍 내린 남자는 차에 오르는 어머니의 치마폭을 걷어주며 허허허허 상쾌하고 들뜬 웃음을 웃었다. 차는 할머니와 딸과 손자가 오후 나들이를 나서는 행복한 풍경을 담았다.  


  일본 할머니 혼자 운영하는 식당에는 작은 접시에 담겨진 음식들이 찬장 안에 진열되어 있었다. 원하는 음식을 직접 꺼내어 먹는 곳이다. 가께 우동도 그릇에 담겨진 채 그 속에 있었다. 어머니가 한 그릇 꺼내더니 뜨거운 국물을 끼얹어 남자에게 먼저 내밀었다. 움칫 놀란 남자가 어머니를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는 젓가락을 꽂아 도로 드렸다.
남자는 전화로 자기와 같은 동포 2세 친구를 불렀다. 함께 먹자해도 굳이 따로 자리를 잡아 자기들 먹을 음식을 나르며 회 접시 하나를 우리 탁자에 갖다 주었다. 그는 맛있게 먹는 우리가 보기 좋은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웃어 주었다. 양쪽 테이블 계산을 하겠다고 몰래 주인과 속삭이니 어느 새 눈치 챈 남자가 쫒아 와서 우리가 먹은 회 접시를 자기 접시 위에 올려버린다. 주인에게 눈을 찡긋하며 계산서를 따로 달란다.
  친구랑 맥주 세 병을 비운 그가 발개진 얼굴로 대리 운전사를 불렀다. 우리들이 만났던 곳까지 잘 모시란 부탁까지 해 주었다. 계산 없는 진심이 얼마나 사람을 감동 시키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10월에 엘에이 올 거라는 그에게 우리 집에 와 계시라 했다. 털털털 시동 거는 소리가 작별을 고했다. 어머니는 남자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셨다. 햇볕에 탄 얼굴에서 안경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짧은 만남의 아쉬운 작별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나고야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사라진 옛집처럼 고향이란 건 없다. 바람에 버무려진 천리향 냄새, 강 따라 떠내려가던 뗏목, 발바닥에 와 닿던 돌멩이의 감촉. 머릿속에 계속 퍼 올려지는 기억. 그것이 고향이다. 안개처럼 아득한 사람, 가슴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는 그리움의 사람, 사람이 고향이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중앙일보 문예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