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실력 향상의 지름길
그러니까 딸을 유치원에 입학시켰던 때도 벌써 16년 전이다. 한국에서 받은 교육으로 미국 학교에 다니는 딸을 이끌려니 망망대해를 가는 기분이었다. 유치원을 보내고 나서야 유치원을 알게 되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초등학교를, 중 고교, 대학, 대학원을 지나서야 어렴풋이 미국의 교육 제도를 알게 되었다. 딸을 키우면서 익힌 길들이라 아들을 데리고는 더욱 잘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길 또한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모퉁이는 이렇게 돌고 저 골목은 저렇게 지나가야지 하는 요령은 두 아이를 대학, 대학원으로 보내놓고 난 이제야 어렴풋이 생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잘했다고 만족하는 것 중 하나는 책을 열심히 읽혔다는 것이다. 딸이 아기일 때부터 목소리를 바꾸기도 하고 훌쩍훌쩍 우는 시늉도 해가며 동화를 현실로 엮어 읽어주었다. 자연히 딸은 책만 보면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졸라 어떤 때는 귀찮기도 했다.
딸이 입학한 유치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책 읽히기 장려 이벤트가 있었다. 선생님이 출판사에서 나온 신간 서적 팜플렛을 집으로 보내주면 부모들이 그 중에서 한 두 권 골라 구입하는 것이었다. 딸은 그 날을 무척 즐겼다. 이 책 저 책 호기심으로 책 표지를 가리키면 나는 딸의 손가락이 가는 곳마다 체크를 해서 보냈다.
책이 학교에 도착하는 날, 다른 아이들은 한 두 권 책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가지만 딸은 내가 픽업하러 가야할 만큼 많았다. 방안에 쌓아둔 책이 모두 도서관에서 빌려온 남의 책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란 게 무척 행복한 눈치였다. 그리고는 혼자서도 책 속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가까워진 덕분에 어딜 가나 책이 없으면 허전한 모양인지 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져 있었다. 차를 타고 갈 때에도 책을 읽느라 조용했고, 어른들이 모여 수다를 떨 때도 전혀 귀찮게 하지 않았다. 덕분에 돌을 갓 지난 동생도 책을 거꾸로 들고도 누나처럼 읽는 흉내를 내었다. 간혹 볼 일이 있어 도서관에만 내려놓으면 몇 시간 걱정 없이 일을 처리하고 올 수도 있었다.
영어는 수학이나 과학 등 어느 과목에나 필요한 것이어서, 책읽기를 집중적으로 시킨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빨리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시간 절약은 물론, 높은 독해실력은 이해와 적용이 빨라서 남보다 쉽게 공부하는 지름길이 되어주었다. 영어가 아닌 다른 과목에서도 뛰어난 독해력이 도움을 주었고, SAT 시험에서는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 큰 이점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다는 관념 없이 책 읽기 습관을 붙여준 것이 학습에 그처럼 좋은 무기가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영어에 스트레스 없이 공부 할 수 있으니 대학에 가서부터는 날개를 단 것처럼 결과가 좋았고, 지금은 원하는 대학원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잘 하고 있다.
"우리 아이는 좋은 책은 읽지 않고 만화나 이상한 이야기책만 읽어요.“ "우리 클 때는 명작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 애들은 그런 책을 통 읽지 않아요." 자녀가 책을 읽고 있는 데도 불평하는 엄마들을 볼 때 마다 나는 말 해준다. "무조건 뭘 읽는 건 좋은 거예요. 달리기 연습을 꼭 운동장에서만 해야 하나요? 산에서도 하고, 들에서도 하고, 골목길에서도, 바닷가에서도 하다보면 실력이 느는 거죠. 읽기 실력, 그건 어느 책이나 잡지나 상관없이 읽어서 향상되면 좋은 거 아니에요? 좋은 책을 많이 읽어서 훌륭한 생각을 얻으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그런 책 읽기를 지루해 하니 도리가 없지요. 좋은 생각이나 교훈은 평소 우리가 삶으로 보여 줍시다. 엄마의 행동과 말이 책 속의 글자보다 더 큰 임펙트를 주지 않겠어요?"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