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기 무슨 짓이고?

 

방학이라 신나게 노는 아들 녀석을 보며 속을 꽁꽁 앓고 있는 요즘이다. 10학년이니 남들은 SAT 준비다 Community 봉사다 하며 대학 갈 준비로 알찬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는데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베짱인지. 이번 여름 방학은 아예 무작정 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몇 주를 계속 친구 집에서 놀았다면서 해가 어둑해져서야 들어오더니, 아이들도 새로운 놀이터가 필요했던지 그저께 부터는 슬금슬금 우리집으로 모여들었다. 부모 없는 빈집이 편해서 더 좋다고 하던데, 내가 집에 버티고 있는데도 찾아와주니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 잽싸게 이층 내 방으로 올라가 문을 꼭 닫아걸고 감옥살이를 한다. 행여 엄마 때문에 부담스럽다며 우루루 다른 집으로 날아가 버릴까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점심 준비도 살금살금 해서 쨘 하고 식탁에 차려내며 상냥한 목소리로 “얘들아, 점심 먹어라” 한다.

오늘도 여섯 명이 뭉쳤다. 쳐다보니 참 한심하다. 너희들 SAT 시험 준비는 끝냈니?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는 걸 꾸욱 삼키고 “너희들 정말 재밌겠다. 실컷 놀아라. 인제 곧 개학하면 또 고생할 텐데” 했다. 어이구우, 이 한심한 녀석들아. 속으로는 눈을 홀기면서도 겉으로는 자기들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아들은 눈이 둥그래져서 쳐다보고, 친구들은 입이 벌어지며 “예!” 대답이 씩씩하다.

 

낮에는 친구들이랑 컴퓨터 게임에 TV에, 조금 더 신이 나면 웃통을 벗고 동네 풀장에 몰려가서는 덤벙덤벙. 거기다 조금 더, 더 신이 나면 부르릉 차를 타고 바닷가로 쫒아간다. 신선 노름이 따로 없는 요즘의 내 아드님 생활이시다. 종일 놀았으니 밤에는 일찍 주무시면 좋으련만 새벽 2시까지 컴퓨터 한쪽 창에서는 정신없이 게임을 하다가, 짤깍 화면을 바꾸어 대 여섯 개 열려있는 채팅창의 친구들과 또 수다가 엄청나다. 다다다다 자판기 두드리는 속도가 엄청나다. 여러 개의 창에다 일일이 대꾸를 해 주려니 얼마나 바쁠까. 거기다 게임까지 해야 되고. 노는 건지 중노동을 하는 건지 도무지 봐 줄 수가 없어서 오늘은 내가 머리를 썼다.

 

아들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컴퓨터에 앉아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렸다. 나의 연극을 알 도리 없는 아들이 엄마가 일어나주기를 기다리다가 도대체 엄마는 컴퓨터에 앉아서 뭘 하느냐고 항의를 한다. “응, 엄마가 지금 일기를 쓰고 있거든. 일기란 하루가 다 끝난 밤에 쓰는 거잖니? 오늘은 좋은 생각이 많이 나네. 지금 쓰지 않으면 다 날아가 버려서 안 돼.” 할 수 없는지 메일 첵업만 좀 하겠다고 도로 내게 사정을 한다. 아마 친구들한테 오늘은 울 엄마 땜에 일찌감치 잘란다.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하여튼 다다거리더니 드디어 자기 방에 들어갔다. 살짝 내다보니 방에 불이 탁 꺼지는 게, 정말 자는 모양이다. 아, 성공. 성공. 졸린 눈을 비비며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2시다. 도대체 이기 무슨 짓이고?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