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그 아련함

 

 

 

, 여름이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바다로, 산으로 한 번은 다녀와야 제대로 보낸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이름하여 바캉스. 막상 떠나고 보면 고생인데도 소풍날을 앞에둔 어린아이처럼 손기락을 꼽으며 기다렸다. 그 단어가 풍기는 노스텔지어. 그것은 추억이 서린 그리움이다. 이제는 잊히는 단어지만, 한때는 혁명적인 단어로 우리의 마음을 지배했다. 더운 여름도 바캉스라는 설레는 연중행사가 있어 오히려 기다려지기도 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그날이 와서 들고 나는 시간보다 미리 계획을 짜고 상상으로 떠나는 것이 더 행복했다.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차서 몇 날 며칠을 머릿속으로 즐거운 길을 다녀온다. 그 여행엔 뜻밖의 일들, 불편함이나 힘들거나 짜증스러운 일들이 끼어들지 못한다. 막상 바캉스를 떠나는 당일부터 끝날 때까지 상상만 못 한 여행이기 쉽다. 그런 줄 번연히 알면서도 여름이 오면 습관처럼 떠날 생각부터 한다. 오래된 관습의 중독성이다. 바캉스란 그 달짝지근한 어감은.

올여름도 우리는 여행계획을 짠다. 우리 가족은 휴양지로 가서 여유롭게 보내고 싶어 하고 조카네 가족은 젊은 사람답게 투어 관광을 원한다. 어느 쪽이 되던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인터넷에 검색한 곳을 짚어가며 계획을 짤 것이다. 미리 가는 여행의 달콤함에 빠지고 싶은 거다.

오래전 아버지도 매해 여름이면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갔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 해는 바닷가 대신 집에서 세 시간 정도의 거리인 산과 강이 만나는 곳이었다. 강기슭에 도착해서 아버지와 오빠는 텐트를 치고 우리는 시원한 물에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한참을 놀다 허기진 배로 뛰어나오면, 엄마가 내민 삶은 옥수수와 닭죽은 꿀맛이었다. 별천지 같던 물놀이가 삼 일째 지날 때쯤,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깔리며 한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졌다. 소나기겠거니 하고 모두 텐트로 들어간 우리는 색다른 재미라고 낄낄대는데, 어느새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텐트가 비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아버지와 오빠는 볼일이 있어 시내에 가셨기에 우리는 무서움에 떨었다. 모래사장은 차오른 물살에 자취를 감추고, 자장가를 들려주던 실개울 물소리는 포효하는 동물의 울음같이 우렁차고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비 맞은 생쥐가 되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개울 건너에 아버지 차가 보였다. 비가 오자 걱정이 되어 일을 제쳐두고 달려오신 거였다. 어른 무릎을 오르내리던 물은 어느새 아버지의 가슴까지 왔다. 길가에 있는 큰 느티나무에 밧줄 한쪽을 묶고 우리를 향해 건너왔다. 아버지는 우리가 있던 근처 나무에 나머지 줄을 연결했다. 우리를 하나씩 등에 업고 한 손은 줄을 잡으면서 개울을 건넜다. 내 차례가 되었다. 평소 과묵하고 엄하셔서 옆에 가기가 어려웠던 아버지 등에 업혀 떨어질세라 목을 꼭 끌어안았다. 엄마의 등보다 넓고 따습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가 엄하고 무섭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가갈수록 아버지는 크지만 여린 가슴을 열어 보이셨다. 바캉스하면 늘 그리운 아버지가 먼저 떠오른다.

 

.우리는 별들이 총총히 피어 있는 계곡의 어느 산자락을 짚어볼 것이다, 그들은 발랄하고 다이내믹한 여행을 떠 올릴 것이고. 오늘 밤엔 조카네와 여행계획으로 또 머리를 맞댈 것이다. 살아오면서 함께 겪은 많은 기억이 사랑과 그리움으로 남아 가족의 중요성과 일체감을 느끼게 해준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