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삶의 조각들을 잇는 바느질


                                                                                                             [LA중앙일보] 발행 2020/11/25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20/11/24 18:08                                            
조각조각 이어진 천 조각에 마지막 땀을 마무리하고 실을 자르면 손끝에 전기가 찌르르 느껴진다. 아직 기술이 미숙해 생각한 대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완성된 소품을 원하던 곳에 펼치고는 대견해서 몇 번을 쓰다듬는다. 요즘 퀼트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내며 머릿속에는 온통 천을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한다. 반 강제로 집에서 지내는 때에 바느질은 시간 보내기와 집중력을 키우는데 딱 맞다.

올해 초 코로나가 번지며 병원에서 일하는 아들은 마스크와 응급실용 모자가 부족해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전선(?)에서 일하는데 균으로부터 보호할 장비가 부족하다니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집에 있는 헝겊으로 마스크와 모자를 만들었다. 손바느질하니 속도가 빠르지 않았지만 정성껏 한 땀 한 땀 이어나갔다. 남편은 언제 끝날지 모를 상황이니 재봉틀이 필요하겠다며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비슷한가 보다. 마스크 부족 현상으로 재봉틀 주문이 밀려 품절상태다. 2주마다 주문한 물품이 없으니 기다릴지 취소할지 결정하라는 이메일이 왔고 그새 재봉틀의 가격은 250달러에서 450달러로 올랐다. 취소하기 애매해 망설이는데 주문한 지 석 달 만에 드디어 재봉틀이 배달됐다.

이미 마스크는 흔해져 만들 필요가 없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유튜브를 보며 재봉틀의 기능을 익혔다. 시누이가 우편으로 천을 보내주고 아들이 아마존에서 조각 천을 주문해 줬다. 남편은 재봉틀을 잘 사용하는지 은근히 어깨너머로 들여다봤다. 주위의 관심 때문에라도 열심히 연습했다.

어머니의 바느질 상자는 낡은 옷의 성한 부분이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 오려져 보관됐었다. 물자가 귀한 시절 알뜰히 활용하며 아름다움을 표현했던 지혜를 새삼 깨닫는다.



몇 년 전 오하이오의 아미시(Amish) 마을에서 본 퀼트가 생각났다. 현대문명을 거부하며, 종교적 이유로 외부 세계와 격리한 채 생활하는 그들의 퀼트는 멋있기로 유명하다. 상점에 진열된 퀼트는 화려한 색과 디자인으로 눈을 끌었지만 주로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는 그들의 이미지와 총천연색의 천은 어울리지 않았고 가격이 비싸서 마음이 씁쓸했었다. 내가 바느질을 해보니 소파 덮개나 이불은 인내심을 가지고 도안대로 정확하게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돼 잠시 그들을 오해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는데.

바느질은 계획했던 대로 그려진 줄을 따라 잘 꿰매질 때도 있지만, 경로를 이탈해 삐뚤빼뚤하게 나가기도 한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엉뚱한 부분에 이어 붙이기를 해서 다시 뜯어낸 경우도 많다. 어떻게 잘되기 만을 바랄까.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는 거다. 항상 행복하면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밝은색끼리만 연결하면 눈이 피곤해 쉽게 싫증이 나니 적절하게 배합해야 어울린다는 것도 배웠다.

우리의 삶도 희로애락을 적절히 조각조각 이어가며 사는 게 아닐까. 지금처럼 막막한 시간과 상황도 내 삶의 한 조각이다. 현재가 어떻든 완성될 미래의 큰 그림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 지금을 이겨낸 자신에게 잘했다고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완성을 위해 힘들다고 불평하며 주저앉지 않으련다. 매일 연습을 통해 성장해간다는 것을 바느질하며 깨닫는다. 현재를 소중히 생각하고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IMG_7358.JPG


20201004_14281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