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골목에 울려퍼진 생일축하 노래
이현숙 / 수필가
이현숙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20/05/28 미주판 17면 기사입력 2020/05/27 18:16

작지만 새로운 시도는 신선한 설렘을 불러온다. 서로 알아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예절인 시기에 두 번의 특별한 생일파티로 울고 웃는 추억을 만들었다.

올해 고희가 되는 남편의 칠순 잔치를 서울에 나가서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쓴 한국식으로 해서 미국인인 그에게 색다른 경험을 해 주려고 계획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자 어쩔 수 없이 포기해 아쉬웠다.

막상 생일이 되니 전화로 축하 인사를 받기는 했지만, 허전하고 쓸쓸했다. 생일상에 올린 미역국과 갈비가 별맛이 나지 않았다. 저녁 나절에 옆집 친구의 딸인 힐다가 잠깐 밖으로 나오라는 전화를 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두 집은 가끔 울타리를 분계선으로 양쪽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 집 쪽으로 걸어가니 바퀴가 달린 테이블에 케이크가 놓였고 풍선 일곱 개가 둥둥 춤을 추었다. 헤수스 가족 여섯 명이 생일 노래를 부르며 장미꽃을 건네주었다. 길 건너편 이웃들도 노랫소리를 듣고 나왔는지 함께 손뼉을 치며 생일 축하한다며 소리쳤다. 뜻밖에 골목은 파티장으로 변했다.

이보다 큰 선물이 있을까. 고마워서 눈물이 흘렀다. 그 사랑의 물결이 마음에 쏘옥 스며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조카가 소포로 보내준 카드와 선물로 테이블을 장식했다. 약속한 8시에 스마트폰으로 하우스 파티 앱에 접속했다. 샌디에이고 사는 조카네 가족, 아들과 여친 그리고 우리, 모두 여덟 명의 얼굴이 전화기 화면에 가득 찼다. 준비된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그동안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조카네가 ‘아무 노래 챌린지'에 맞추어 노래와 춤으로 축하 공연을 했고, 축배도 나누었다. 중간에 낱말 맞히기와 퀴즈 게임을 하며 승패에 상관없이 마냥 즐거웠다.

멀리 있지만 바로 옆에 있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 시간 넘게 놀고 나니 너무 웃어서 턱이 뻐근했다. SNS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활용해 사람들과의 연결과 소통을 한다더니 그 안에 내가 있었다. 장례식과 결혼식, 졸업식 그리고 학교나 예배가 인터넷 생중계나 화상 회의 형식으로 바뀌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배웠다.

요즘 집콕이라는 말이 생기며 ‘방구석 일렬’이라는 VIP석에서 편안한 복장으로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티켓을 사야 하는 부담도 없이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본다더니 기계치인 나도 쉽게 배웠다. 편안하고 간단하게 연결되는 새로운 소통의 창을 가족과 친지들과도 자주 이용해야겠다.

뉴노멀(New Normal)식 거리 두기의 새로운 생일 파티였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데 이미 닫힌 문만 보기 때문에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는 헬렌 켈러의 말이 떠오른다.

남편의 칠순을 기념하고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이런 방법이 있는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웃이 만들어준 울타리 너머 깜짝 파티와 동영상으로 나눈 가족의 사랑이 코로나 우울증을 날려버렸다. 주저앉아 뒤만 보고 아쉬워하다 앞을 보니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에서 일상으로 향하는 문을 조금씩 열고 있다. 전과는 달라진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넥스트 노멀(Next Normal)’은 어떤 새로운 도전으로 우리를 이끌지 모르지만, 받아들이고 활용해 삶을 긍정의 에너지로 채우려 한다.






생일2.JPG

생일.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