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래요/ 이현숙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스럽다. 매일 전해지는 뉴스는 하루하루 늘어나는 숫자로 ‘당신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듯 옥죄어 온다. 지난주에는 남편의 전 직장 동료인 45살 된 레드가 호흡곤란을 느껴 응급실에 간 지 사흘 만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술을 즐기고 애연가라 폐가 좋지 않아 코로나바이러스에 쉽게 전염되었나보다는 추측만 무성하게 단체 메시지 방에 돌아다녔다. 젊은 나이에 죽어서, 또 이 시국에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없기에 더 안타까워했다. 큰아들은 병원에서 일하는데 직장동료가 확진자로 판명되었다며 자신은 괜찮지만, 혹시 모르니 당분간 엄마를 보러 가지 못한다며 전화했다.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역사에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염병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세균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필수적인 활동을 제외한 외출과 비즈니스 운영을 금지하는 ‘세이퍼 앳 홈(Safer at Home)’ 긴급 명령이 발동돼 거의 집안에서만 지내자니 답답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핸드폰이 갑자기 켜지지 않았다. 애플 스토어가 모두 문을 닫아 할 수 없이 고장센터로 우편 발송을 했는데 2주 정도 걸린단다. 그동안 서울의 가족들이나 지인들과 유일하게 소통의 끈을 이어주었는데 그나마 막혀버렸다. 모든 것이 불통이다. 앞뒤로 막힌 기분이다. 작은 상자 안에 갇힌 기분이다. 전기와 물을 사용하고 먹을 음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남편의 말은 머리로 이해가 되는데 마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목이 간질간질하고 뭔가가 걸린 듯하더니 통증이 느껴졌다. 콧물도 흐르고 으실으실 찬기운이 몸에 흐르더니 온 몸이 아팠다.  알레르기 약을 먹었지만,   피곤해서 자꾸 누워있었다. 몸살인가하고 감기 약도 먹었다.  벌써  2주째다. 벌떡 일어나 컴퓨터로 인터넷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증상을 확인했다.  비슷했다. 만약에 내가 확진자라면 어쩌지. 내가 아프면 남편에게도 옮기겠지. 지난 며칠 동안 나의 동선을 되집어 보았다. 만났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혹시 나로 인해 누군가가 아프다면 죄의식에 어찌 살까. 주위에서 나를 피하고 무서워할 것이다. 많은 생각이 몰려들며 머리가 아팠다. 끙끙 앓는 나를 데리고 남편은 응급센터(Urgent Care)로 갔다. 주차장에서부터 겁이 났다. 입구에 방역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가 차트를 들고 서 있다. 환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기실이 아닌 문밖에 뜨문뜨문 놓인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없던 병이 생길 정도다. 겁이 나서 그냥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남편도 엄두가 나지 않는지 차를 돌렸다.

주치의에게 전화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의사가 전화로 안부를 묻고 언제든 연락 하라도 했었다. 메시지를 받은 의사와 다음날 통화를 했다. 내 증상을 듣고 나더니 열이 나거나 기침이 나오느냐고 물었다. 아니라는 답에 그는 “나도 그래요. 알레르기 약 처방해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한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걱정과 두려움이 와르르 무너졌다. Dr. 마이클 이튼은 나와 같은 증상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는 의미인데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됐다. 그가 신종바이러스 증상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하며 주의를 줬다면 아마도 나는 더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냥  나와 같은 심정이었다고 이해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소통이 막혀 불통이 된 시기에 들은 반가운 그 한마디를 자꾸 입안에 되풀이했다. 나도 그래요. 나도 알아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정서적으로 공감해주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라고 느꼈다. 나는 그동안 상대방은 걱정하는데 무조건 안심시키려 아무렇지 않은 일로 축소해 버리며 설득하려고 했던 적이 많았다. 상대방을 이해하기보다는 내 주장에 옳다고 잡아당기려 했다.

진정한 대화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았다.

동생들과 맛있는 식사도 옆집 꼬마와 소꿉놀이를 못 하니 속상하다. 보고 싶은 조카도 못 만나고 아들 해주려고 사다 놓은 떡볶이 재료가 냉동 칸에서 꽁꽁 얼어 있는 것도 화가 났다. 전화기 고장으로 소식을 주고받거나 수다를 떨지 못하니 답답한데도 곧 지나갈 것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나 스스로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불통이었기에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달라진 일상을 억지로 받아들이려 누르지 말고 그냥 풀자. 화가 나면 쓰레기통을 한번 걷어차자.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