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日常)이 축복이었네
딸이 이모티콘을 보냈다. 머리에서 열이 풀풀 나는 도깨비가 옆으로 찢어진 눈을 이마까지 치켜뜨고 씩씩댄다. “엄마, 꼭 피넛 버터를 먹어야 돼?” Target의 텅 빈 식품 진열대가 너무 충격적이라 내 딴에는 실감나게 사진을 찍어 가족 카톡방에 올렸더니 득달같이 날아온 딸의 꾸지람이다. 내가 괜히 피넛버터 사러갔다고 실토했나? 좀 더 수준 높은 걸 들먹일 걸... 후회하고 있는데 아들의 반응도 왔다. 어떤 안부를 물어도 ‘굿’ 한마디, 우리의 전화벨 소리에는 ‘미팅 중’이라는 메시지. 애교 섞인 대화 시도에도 ‘nothing'으로 일관하던 녀석이 제법 긴 글을 보냈다. 두 손을 간절히 모은 이모티콘과 함께 제발요, 엄마. 집에만 계세요. 한다. 이 아이들이 언제부터 엄마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았지? 괜히 행복해지려고 한다.
요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집마다 효자 효녀 속출이다. 매일 안부 전화 하는 아이, 필요한 것 있으면 말만 하라는 아이, 아예 식료품을 사서 현관 앞에 던져두고 가는 아이 등. 어제는 혼자 사는 친구가 하소연을 해왔다. 딸이 아예 엄마 차를 자기 집으로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외출 금지령에 확실한 조처라며 마구 웃었다. 세상이 거꾸로 되었다. 자녀가 부모를 단속하느라고 난리라니.
달라진 게 아이들만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스케쥴을 확인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교회의 예배, 정기적인 각종 모임, 친구와의 약속이 사라졌다. 유일한 운동인 골프마저 금지다. 덕분에 시간이 널널해졌다. 얼마나 원하던 상황인가. 때론 ‘leave me alone'을 외치기도 했다. 내 시간을 빼앗겨야 할 때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지금이 바로 소원했던 그런 시간이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해 내 시간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은 왜 이리 허전할까. 일상을 붙잡아 주던 뼈대가 사라진 기분, 허공에 둥 뜬 것 같은, 알맹이가 비어버린 느낌이다.
저녁 찬거리를 걱정하며 마켓을 들락거리고, 식당에 앉아 메뉴를 들여다보고, 트레픽이 너무 심하다며 툴툴거리던 일이 이제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공기처럼 물처럼 아무런 느낌 없던 소소한 일상(日常)이 이제 보니 축복이었다.
오늘은 내 서재 정리를 했다. 온갖 잡동사니가 나왔다. 여행 후 남은 중국, 일본, 유럽 돈도 나왔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바깥으로 벋어가던 관심과 에너지를 안으로 모아보니 세상의 가치가 달라진다. 다이야반지보다 한 장의 휴지가. 예금통장보다 라면 하나가 더 고맙고 빌게이츠나 마크 저크버그보다 내 가족이 더 멋지다. 외출 전 옷 맵시를 거울에 비춰보던 일, 약속 시간을 놓칠까봐 스트레스 받던 일이 모두 내 삶의 꽃이었다. 내 시간을 빼앗아가던 사람이 나의 보배였다.
딸이 또 전화를 했다. 아예 페이스 타임이다. “엄마? 뭐 해?” 커다란 눈이 전화기 안에서 내 등 뒤를 둘러본다. 에구. 에구. 아무데도 안 가고 집에만 있단다. 하하하 웃는 딸의 웃음소리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희망을 띄운다. <3/24/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