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망자의 날'에 배운다

이현숙 / 수필가
이현숙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10/21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0/20 11:58                                        
올해도 화려한 색으로 단장을 한 해골 모양의 장식과 오색의 종이꽃들이 상점마다 가득하다. 10월 말과 11월 초에 있는 핼로윈과 '망자의 날'(Dia de Muertos)이 다가오면서 히스패닉이 주로 모여 사는 동네는 축제 분위기다.

핼로윈은 켈트족에서 유래됐다. 태양의 힘이 약해진 때, 혼령이 다시 땅으로 내려와 농사를 망치게 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몸을 빌려 거처를 마련한다고 믿었다. 귀신을 쫓아버리기 위한 의식으로 집 앞에 그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꾸미고 음식을 내놓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종교적인 인식과 상술이 보태지며 놀이로 변했다. 유령, 마녀, 박쥐, 검은 고양이 등으로 집 앞을 장식하고, 마녀와 귀신 분장을 한 아이들이 캔디 등을 얻으러 돌아다닌다.

망자의 날은 고대 멕시코 아스테카 문명에서 비롯됐다. 죽은 영혼이 1년에 한 번 이승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찾아와 살피다 간다고 믿는다. 조상을 위해 제단을 만들고,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날이다. 추모공원이나 묘지를 찾아 기도를 올리고 음식을 먹으며 노래도 한다. 월트디즈니의 만화 영화 '코코(Coco)'를 보면 망자의 날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알 수 있다. 주인공 미겔이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 가족과의 갈등을 풀고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가족간의 사랑과 화합을 주제로 멕시코인이 생각하는 죽은 자의 세계를 화려하고 유쾌하게 잘 표현했다. 이승에서 기억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으면 망자의 세계에서도 소멸해버린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도 제사문화가 있다. 조상의 기일이나 명절에 가족이 모여 음식을 차려 놓고 망자를 기억하고 자손의 번영을 기원한다. 어릴 적, 검은 정장을 하고 지방을 쓰시는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벼루에 먹을 갈았다. 엄숙하고 경건하게 치렀다. 종교적인 이유와 미국 이민으로 제사를 올린 지 오래됐다. 본국에서도 절차가 간소화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제사나 명절 문화는 앞으로 몇 세대를 거쳐 내려가면서 모습을 사라지거나 많이 변화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하리라.

영화 '코코'에서 주인공인 미겔이 '나를 기억해줘(Remember me)'라는 노래를 부르자 치매인 할머니 코코는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감동적이라 나도 눈물을 흘렸다. 산 자와 죽은 자는 기억을 통해 연결되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다.

내 책상에는 생전의 부모님이 그랜드캐년에서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과 카지노의 한 기계 앞에 비스듬히 앉아 게임을 하는 시아버지 사진도 있다. 한 번씩 들여다보며 삶에 위로를 받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행복하다. 삶의 한 부분을 공유했다는 것은 두고두고 의미가 있다. 망자의 날에 죽은 자를 추모하며 긍정적인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운다.


망2.jpg


망1.jpg


망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