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서 손님이 왔다.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됐는데 초면이기도 하지만 언어가 다르기에 서먹서먹했다. 조카의 아내가 통역해 어설프게 대화를 나누었다. 마주 앉았던 조카의 처형인 마리아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핸드폰을 꺼내서 자신이 보는 드라마를 보여준다. 스페인어로 밑에 번역이 되어 나왔다. 15살인 그들의 딸 안드리아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났다며 자꾸 곁눈으로 슬금슬금 나를 본다. 마리아가 페루로 돌아가기 전에 코리아타운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아, 코리아타운.
미국에 이민 온 80년대 초, 남미계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터를 잡았다. 말과 문화 모두 낯선 환경에서 긴장하며 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러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코리아타운에 나갔다. 그 나들이는 마치 친정집에 가듯이 기다려지고 설렜다. 한국 식료품을 취급하던 유일한 올림픽마켓에 갔다. 그 안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은 단지 같은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반갑고 정겨웠다. 한동네 살던 언니를 만난 것처럼 덥석 손을 잡고 잘 지냈느냐는 안부를 묻고 싶을 정도다.
지금의 코리아타운은 반경도 넓어지고 뿌리를 깊게 내렸다. 한인들의 주거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 거대한 상권을 이루어 한국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일을 해결할 수가 있다. 영어 한마디 사용하지 않아도 별로 힘들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나 또한 변했다. 20대 초반의 갓 시집온 새댁이 아니다. 중년의 나이로 생활이 미국화가 되어서인지 코리아타운이라는 단어가 더 마음을 찡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중심거리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과 놀만디 길은 지나기 싫어 일부러 돌아가기도 한다. 나를 자극하는 곳이 두 군데 있기 때문이다.
올드 타이머들의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는 영빈관(VIP Palace)의 달라진 모습은 명치끝을 아프게 했다. 이 건물은 주인이 1975년에 직접 청기와 1만 장을 공수해 오고 단청 장인까지 초빙해서 한국적 문화와 정서를 담은 한식당을 열었다. 당시에는 아파트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면 무슨 냄새냐고 이웃에서 소동이 나고, 강한 마늘 냄새에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눈치 볼 것 없이 된장찌개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그곳이 우리에게는 고향 집이었다. 후에 뷔페로 바뀌었을 때는 돌잔치 회갑 잔치 등으로 자주 드나들었다.
몇 년 전 남미 레스토랑인 ‘겔라게차(Guelaguetza)’로 바뀌어 내 눈을 의심했다. 된장의 구수한 냄새가 뱄던 기와가 이제는 남미의 몰레 칠리소스의 진한 향에 묻혀버렸다. 주말이면 그들의 민속춤 공연이 펼쳐지고 식당 안의 코너에는 민속공예품도 판다. 청기와 밑이 진한 오렌지색으로 칠해진 벽, 그 위에 그려진 남미계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철거되고야 말 청기와를 곱게 걷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얼룩진 단청이 아깝다. 우리의 고유문화를 지켜내지 못해 아쉽다.
건너편에 있는 다울정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부지는 LA시가 기증했고 십시일반 교포사회에서 모아진 성금으로 이루어졌다. 경복궁 안에 있는 팔각정을 모델로 했다. 한국에서 온 열여섯 명의 장인이 못과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는 한국 전통 조립 공법으로 기와를 얹고 단청을 입혔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우리 민족이기에 미 주류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고 1.5세, 2세 한인들에게는 정체성과 긍지를 심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민 100년을 넘는 한인사회에서 처음으로 세워지는 한국 전통의 상징 조형물이라는 자부심에 들떴다. 그러나 지금은 근처 큰 건물의 그림자에 눌려 다울정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팔각정과 어울리지도 않는 철근 울타리 안에 갇혀 쓰레기만 쌓여간다.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세 길이 엇갈리는 삼각지 구석 자리에 웅크리고 있다. 가끔 한인사회의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이 필요할 때마다 ‘단장을 다시 하고 관리에 신경 쓰자’라고 하지만 반짝할 뿐, 다 함께 우리라는 ‘다울정’의 의미는 빛을 바랜 지 오래다.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는, 세월 따라 퇴색해져 가는 마음의 고향이 안쓰러워 아예 안 보려고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서 다닌다.
엘에이 다운타운 근처의 차이나타운은 두 마리의 용이 만든 아치(Dragon Gate)로부터 시작이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기와 건물과 황금용 사이에 전통물품을 파는 상점들로 중국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또 일본 타운인 리틀 토교(Little Tokyo)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신사의 토리이가 높게 자리 잡고 대문 역할을 한다. 전통 음식점과 서점이 야트막하고 아담한 건물 안에서 동양의 멋을 풍기며 자리를 잡았다. 특별히 재패니즈 아메리칸 내셔널 박물관은 그들의 이민역사를 외국인과 후손에게 남겼다. 이 두 곳은 엘에이의 관광 명소로 꼽히며 외국인을 불러들이며 자신을 알리는 데 일조를 한다.
가끔 손님 대접할 일이 생기면 고민한다. 한국문화와 전통을 알리고 싶은데 딱히 내세울 것이 없어 아쉽다. 코리아타운에는 한국에 대해 알릴 건물이나 문화를 나타내 보여줄 그 무엇도 없다. 한국을 느끼기 위해 찾은 외국인의 눈에 이해하기 힘든 한글 간판만이 늘어서 있는 코리아타운에 실망할 것이다. 그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가 봤자 볼 것도 없다는 인식에 나의 모국인 Korea도 한꺼번에 묶어버리면 어쩌나 걱정된다.
그뿐 아니라 우리 2세에게 부끄럽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 뿌리는 한국에 있다는 정체성을 심어줄 상징적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화 되어가는 그들에게 한국인으로 떳떳하게 내세울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가 이어질 때 그 의미가 빛을 발한다고 했다. 지금 내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그 다음으로 이어질 터인데.
먹고 사는데 바빠서라는 핑계를 내려놓고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려야 한다. 코리아 타운(Korea town)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의 문화적 매력을 발산시켜야 한다. 느끼게 해야 한다. 저절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요즘은 한식이 외국인들에게 대세이니 손님을 코리아타운의 식당으로 데려가 갈비와 잡채로 입이라도 즐겁게 해줘야겠다.
The Koreatown doesn't have any culture structure to show like as Chinatown or as Japanese town.
I like to take foreigner to the place that they can inspire about Korean culture. Unfortunately, Koreatown doesn't have any place to feel atmosphere of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