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스버디스의 언덕 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봤다. 저 멀리 바다가 하늘과 하나로 만난 곳은 잔잔하게 일직선을 이룬 채 낮잠 중인가 보다. 등 뒤로는 유리교회(Wayfarers Chapel)가 온 유리창에 은빛 물결을 담아 반짝이며 그늘을 만든다. 통나무로 된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비릿한 냄새를 깊게 들이마신다. 오랜만에 찾았는데도 변한 것이 없구나.
Wayfarers Chapel. 벽과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유리교회’로 불린다. 길 떠난 자를 위한 교회란 말처럼 자연과 하나를 이루고 있어 명상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삼나무, 노간주나무, 소나무 주위에 선인장, 장미, 백합, 철쭉꽃 등이 피어 있다.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십자가 탑이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룬다. 커피 한잔 들고 나무 벤치에 앉아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느긋해지는 평화로운 곳이라 드라마 <올인>의 촬영 배경이 되기도 했다.
나는 이곳에서 35년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구경삼아 들렀다가 경치에 반해 사무실에 물었다. 마침 예약을 취소한 사람이 있어서 열흘 뒤인 금요일 오후 시간이 빈다고 했다. 우리를 위해 비워진 시간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결정하며 희망에 부풀었다. 나는 행복하게 잘 살 거야.
결혼식 날, 마음 둘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허둥댔다. 번진 화장을 고쳐줄 가족도, 엉킨 드레스 자락을 펼쳐줄 친구도 없다. 둘러보아도 아직은 낯선 시댁 친지들뿐이다. 웃어라! 혼자라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고 환하게 웃어야 해. 그게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는 길이야. 전날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전화로 해준 말이 생각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외로움을 안으로 삭히며 환하게 웃으려 노력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파도에 밀려 왔다가 돌아가는 듯했기에 딸의 홀로 서는 모습을 전해주길 바랐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행복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살았는데 녹록치 않은 삶을 이겨내지 못했다. 20년 넘게 가꾸어온 가정이 허물어졌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 길을 외면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다만 바라봤다. 내 삶은 변화가 많았는데 바다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평온하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다는 말이 없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삼킨다. 쓴맛이 입안을 맴돈다.
주차장의 비탈길을 터벅터벅 걸어 차로 향했다. 바다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차창너머의 바다는 내 차와 속도를 맞추며 따라온다. 왼쪽으로 돌아 엔젤스 게이트(Angel's Gate)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우정의 종각(Korean Friendship Bell)이 있는 곳이다. 종각에 이르는 길에 들어서자 내 키만 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두 장승이 버티고 서서 미소로 반겨준다. 한국 고유의 단청이 칠해진 정자의 처마 끝과 지붕에 흰 구름이 걸려 있고, 초록의 잔디에 푸른 바다가 올라앉아 색들의 화려한 향연이 펼쳐졌다. 종은 1976년 미국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서 성덕대왕신종을 본 따서 제작하여 미국에 선물했다.
우정의 종, 한인들은 이역만리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우정의 종각을 찾아 외로운 마음을 달랜다. 그 한이 배어서인가. 언덕 위에 서 있는 범종을 볼 때마다 슬픈 그늘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과 한국의 선녀가 손잡은 상징을 가슴에 새긴 채 실려 온 그녀. 소금기 절은 바람을 맞으며 낯선 생활의 어려움을 속울음으로 바다에 던졌겠지. 사계절 내내 따가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수월하지 않은 삶을 한숨으로 삭혔으리라. 이제 한고비 넘겼나 싶으면 다시 또 달려드는 파도에, 잠겨버린 꿈과 열정이 안타까워 장탄식을 늘어놓지 않았을까. 이민 초기의 내 하소연도 아직 얼룩으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정자를 지나 바다에 닿을 듯 막힘없이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앉았다. 바다를 봤다. 산페드로(San Pedro) 바다가 보내는 바람이 어찌나 힘이 센지 머리카락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날린다. 머릿속의 시끄러운 삶의 부스러기가 바람에 묻어갔으면 좋겠다. 길게 흰 꼬리를 단 노란색 연과 물고기 모양을 한 파란 연이 하늘과 바다 사이를 날며 춤을 춘다. 옆에 백인 할아버지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얼레를 잡고 연의 높이를 조절했다.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아이가 할아버지를 부르며 도움을 청하는데 연줄이 끊어지며 노란색 연이 바다를 향해 튕겨 나갔다. 저 연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대로 바람의 힘을 빌리면 혹시 한국까지 가려나. 아니 얼마 못 가서 바다 속으로 젖어들기 십상일 것이다. 양손을 허우적대며 안타까워하는 아이의 어깨를 할아버지가 다독인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바다를 본다. 아니, 말없는 바다가 나를 본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후하고 한 번에 탁 놓아버렸다. 쏟아냈다. 속이 시원하다.
공자(孔子)는 바다가 넓은 이유는 가장 낮은 곳에서 온갖 물을 다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사연을 들고 바다를 찾아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침묵으로 받아준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함이 없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또다시 넋두리하러 올 것을 알기에.
바다는 말이 없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The ocean, it forever remains there.
It has tolerance, and gives comfort and healing to the beholder.
바바다는 그저 그 자리에 있다.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되는 곳이다.
The ocean, it forever remains there.
It has tolerance, and gives comfort and healing to the beholder.다는 그저 그 자리에 있다.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되는 곳이다.
The ocean, it forever remains there.
It has tolerance, and gives comfort and healing to the beho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