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중앙일보] 발행 2019/06/2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6/24 19:59
한국을 다녀온 친구가 고국 소식을 가지고 왔다. 신이 나서 전하는 여러 이야깃거리 중에 솔깃한 것이 있다. 남편의 은퇴 후 변해버린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문제는 아내는 평소에 마음껏 사용하던 시간을 남편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와 같은 변해버린 삶의 패턴이다.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는 방법도 나왔다. 함께 즐길 취미를 만들라, 여행을 하라. 등 시간을 보낼 방도는 많다. 그러나 삼 시 세 끼 식사 해결은 누구에게나 난제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유머로까지 탄생 되었다. 식사를 챙겨야하는 횟수에 따라 삼식((三食), 이식(二食), 일식(一食)이란 단어 뒤에 붙는 접미사도 다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좀 심하다 싶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바친 가장의 수고는 온데 간 데 없고 천덕꾸러기 취급이라니. 그러나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은퇴 후 발생하는 스트레스 중 가장 큰 것이 식사 준비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가족의 식사 준비는 젊을 때부터도 짐이었다. 함께 수다를 떨다가 헤어질 무렵이면 “오늘 저녁은 뭐하지?”가 마지막 인사다. 그런데 나이가 든 요즈음엔 음식을 잘하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조차 요새 뭘 먹고 사니? 하며 식사 안부(?)를 묻는다. 아이를 키울 때는 냉장고에 재료를 그득히 채워두어도 상해서 버리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채소를 반도 못 먹고 버리기 일쑤다. 달랑 두 사람 먹자고 부엌에서 두 세 시간을 서서 보내는 것에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래서 혼자 공상을 하기도 한다. 내가 만일 남자라면...
내가 만일 남자라면 ‘내가 은퇴했으니 이제 당신도 살림에서 은퇴해라’ 하겠다. 부엌 문 닫아라. 나가서 사 먹자. 두 사람 먹으려고 개스 써. 물 써. 시간 써. 에너지 써. 그럴 필요 없다. 매일 외식이다. 선언한다. 아내가 얼마나 행복해하랴. 부엌에서 해방이 되다니. 남편의 배려가 무척 고마울 것이다. 오늘은 한식, 내일은 일식. 처음에는 신나게 돌아다니겠지. 그러나 식당 순례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거다. 음식 값이 비싸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 몸에 해롭다. 나가기 귀찮다. 등등 여러 핑계가 나오면서 슬그머니 부엌이 다시 개방될 거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온 여자의 속성은 그렇다. 아내 곁에서 상추라도 씻어주고 설거지도 하면서 수고한다. 고맙다, 맛있다, 한마디 해 준다면 아내는 감격할 것이며 왕으로 모시기에 인색하지 않을 거다. 이 쉬운 처세를 남편들은 왜 못 하는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제발 결혼하시게, 좋은 아내를 맞으면 행복해지고, 악처를 맞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네.” 악처를 만나서 철학자가 되었는지, 철학자이기에 악처가 되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의 아내 크산티페도 남편의 행동에 따라 충분히 양처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크라테스가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석공소를 혼자서 운영 했고 그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는 군장 비용까지 댄 억척 아내였다. 그녀가 만일 소크라테스의 배려와 사랑을 받았어도 악처로 살았을까. 악처가 되는 것도 양처가 되는 것도 모두 남편하기 나름이 아닌가. 내가 만일 남자라면 정말 멋진 남편이 될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