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8/10/19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10/18 18:17
책상을 새로 샀다. 조립 가구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IKEA에 가서 상품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집에 돌아와 상자를 열어 보니 일련번호가 적힌 스티커가 크고 작은 나무판과 부품에 붙었다. 설명서에 만드는 과정이 단계별로 상세하게 적혔기에 순서대로 따라 했다. 봉투에 나사와 볼트가 들어 있고, 조일 수 있는 작은 공구와 접착 풀까지 곁들여서 편리했다.
남편과 둘이 조립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왔다.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손을 모으니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멋진 책상이 만들어졌다. 완성품을 사는 것에 비해 돈이 절반 정도 절약됐고, 무엇보다 가족이 둘러앉아 만들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Do it yourself.
미국인은 스스로 고치고 만드는 일이 몸에 배어 있다. 자신이 해결하려는 자립심이 강하기도 하지만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이웃집 차고에서 자동차 보닛을 열고 아버지와 아들이 차를 수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이어나 배터리를 교체하는 것은 기본이다. 자녀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면 자신이 타던 차를 물려 주거나 중고차를 사기에 고장 나면 함께 고친다. 20년이 넘어 페인트가 벗겨지고 여기저기 흠집이 났어도 구석구석 자신의 손길이 배었기에 열심히 세차하는 그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꼈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면 정비소에 맡기지만 간단한 수리는 아버지에게서 배운다. 자동차 부품가게가 곳곳에 있어서 사기도 쉽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집으로 배달되기에 편리하다.집수리도 직접 한다. 가구는 완제품보다는 조립식을 많이 사고 집안의 분위기에 맞추어 개조한다. 목욕탕 타일을 바꾸는 일과 집 안팎의 페인트칠은 물론이다. 뒤뜰의 나무 울타리가 덜렁거려 철사로 대충 엮어 놨는데 아들이 쉬는 날 새것으로 바꿀 계획이다. 무리하지 않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하나씩 일을 하니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 어릴 적부터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에 스스로 해내는 것에 익숙하다. 아버지가 차를 고칠 때 옆에서 렌치를 집어 주고, 지붕에 올라갈 때 사다리를 잡아주는 것이 틀의 기본이다. 트럭을 빌려 이삿짐을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의식이 없다.
어릴 때부터 손에 익고 눈에 담은 지식은 잊히지 않는다. 기본을 알면 아는 만큼 삶이 편하고 돈과 에너지가 절약된다. 자주 하다 보면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에 경쟁력을 키우는 연습이 되기도 한다.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명언이 떠오른다. 하나씩 보고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편 옆에서 거들기만 하는데도 일을 마친 후에 오는 성취감이 크다. 미국에 살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고치고 만드는 실용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삶도 스스로 고치며 살아야한다. 눈을 뜨면서부터 매순간 무언가를 결정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남을 원망하거나 책임전가로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는다.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 혼자 살 수 없지만 내 삶의 주인은 나다. Do it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