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너 이름이 뭐니

‘부부동성’으로 성이 두 번 바뀌었다그래도 나는 내 이름을 사랑한다나만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2018.08.30

이현숙
재미수필가

너 이름이 뭐니

 

너 이름이 뭐니. 한국의 한 연예인의 어투를 흉내 내며 한동안 유행하던 말이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본 지인과 전화 통화 후에 혼자 그 성대모사를 하고는 웃었다. 지난주 <한국과 다언어 문학의 밤(K Lit & Multilingual Poetry Night)> 행사가 있었는데 한국, 히스패닉계, 필리핀 그리고 영어권 문인들이 모여 작품 발표를 했다. 지인이 전화를 해서 단체 사진에는 분명히 이현숙이 앞줄 가운데 서 있는데, 본문 기사에는 김현숙이라고 났으니 신문사의 실수라고 흥분했다. 틀린 것이 아니고 둘 다 나라고 답했다.

본의 아니게 내 이름은 여러 개다. 정확히 말하면 성이 바뀌었다.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은 이현숙李賢淑이다. 미국 영주권자였던 선배와 결혼하고 이민 서류를 만들면서 김현숙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받으러 줄을 서서 기다리며 나는 김현숙이다라고 주문 외듯 되 내었다. 혹시 넋 놓고 앉아 있다가 내 이름이 낯설어, 못 알아들고 차례를 놓칠까 봐 걱정됐다. 미국에 들어와서 모든 서류에 김으로 등록이 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그나마도 누구의 엄마로 살며 성도 이름도 잊었다.

살다 보면 예기지 못한 일을 겪게 된다. 잘 살고 싶었는데 이혼했다. 이현숙으로 돌아와 몇 년 홀로서기를 하다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청혼할 때 아직도 대부분 미국 남자는 ‘Mrs. 누구누구가 되어 주겠냐고 묻는다. 남편의 질문에 Yes라고 답하고 그의 성을 따라 Mrs. Senteno가 됐다. 공공장소에서 Mrs. 센테노하고 호명을 할 때, 내가 대답하면 주위의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본다. 동양계 여자가 히스패닉 성으로 불리니 의외라 느껴지나 보다. 한인 이 모이는 장소에서도 같은 반응이다. 재혼 후에 소셜번호(주민등록 번호)를 다시 받았고, 운전면허증과 여권을 재발급 받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이혼과 재혼이라는 개인적인 사정이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성이 바뀌기에 자연스레 알려진다. 문단에 등단하며 작품집을 냈는데 첫 수필집에는 당시의 김현숙으로 인쇄를 했고, 두 번째 수필집에는 이현숙을 사용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나를 알던 사람은 김현숙, 요즘 만난 사람은 이현숙으로 헷갈리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부부동성夫婦同性은 영어권의 관습만이 아니고 일본도 그렇다. 성을 영어로 하면 Family Name, 즉 가족의 이름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식이다. 각종 서류의 성을 쓰는 난에 Family Name을 사용하다가 요즘은 여성 운동가들의 항의로 Last Name이라고 바꿨다. 미국에서는 법적인 서류에 배우자의 이름을 함께 적어 넣어 공동의 책임을 지게 되고, 은행 계좌도 부부의 공동명의로 한다. 성이 같지 않으면 부부가 아니라 동거인으로 간주 되 불편한 일을 겪는 경우도 있다. 만약 부부 중 한 사람이 사고를 당했을 때, 성이 다르면 부부로 인정이 안 돼 문제 해결을 위해 결혼 증명서를 지참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생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 한낮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지만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성을 바꾸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느냐, 남편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동질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다. 힐러리 여사는 변호사로 일 했기에 결혼 후에도 본인의 성을 사용하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니 힐러리 로뎀 클린턴으로 바꾸었다. 친구부부는 둘 다 의사인데 집으로 응급전화가 왔을 때 같은 성이면 누구를 찾는지 헷갈리니 각자의 성을 유지하기로 결혼 전부터 약속을 했단다. 우리는 그녀를 손다르크로 부르며 관례를 깬 용기를 부러워했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개인의 경력을 쌓는 경우가 늘어난 세대에 살고 있어서인지 남편이 부인의 성을 따르거나 여성이 자신의 성을 지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붙임표(-)를 넣어서 남편과 부인의 성을 둘 다 쓰는 경우와 성을 합쳐 새로운 성을 만들기도 한다. 중남미에서는 이름 뒤에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을 이어서 붙이는 게 관례라 보통 3-4개가 연결되기에 이름이 길다. 성은 개인뿐 아니라 가족과 국적, 민족적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관습이나 강요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우리는 성에 대한 집착이 강해 결백을 주장할 때 성을 갈겠다고 하거나 큰일을 해내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한다. 한국에 살았다면 아버지가 주신 성을 그대로 사용해서 오늘 같은 경우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나는 두 번이나 성이 바뀐 내 이름이지만 사랑한다. 그 안에 나만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실수와 허점투성일 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삶의 밑거름이자 산 경험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지금의 바로 나니까 나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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