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 우리의 ‘음식문화’ 이제는 돌아볼 때
성민희 / 재미수필가
오랜만에 한인타운에 갔다. 한글 간판이 즐비한 거리로 들어서는 마음이 오늘따라 흐뭇하다. 지난 달 한인타운을 분리하여 방글라데시타운으로 만들려는 방안을 놓고 실시된 주민 투표에서 우리의 결집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체 참여 유권자 1만 9천 126명 가운데 98%에 해당하는 1만 8천 844명이 반대하여 이 안은 부결이 되고 한인이 승리했다. 한마음으로 뭉쳐서 시민권자로서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했다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었다는 것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한인타운에서 가장 붐비는 윌셔와 웨스턴 길 코너로 들어서자 낯 선 대형 광고가 보인다. 빨간색 낙지가 두 눈을 부릅뜨고 우뚝 서 있는 그림이다. 그 옆으로 '저는 저예요. 고기가 아니라구요'라는 문구가 영어와 한글로 씌어졌다. 도대체 저게 뭐지? 알아보니 세계적 ‘동물보호단체’에서 설치한 광고라고 한다. 낙지를 산 채로 잘라서 먹는 것은 한인의 잔인한 먹거리 문화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들은 산 낙지를 판매하는 식당 이름까지 언급하며 망신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LA 총영사관 앞에서는 개의 식용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50여 명의 시위자가 개고기 금지(Stop Dog Meat)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단체로 차려입었다. 참가자들은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죽음을 기다리는 개, 가죽이 벗겨진 채 갈고리에 매달린 개, 도살 당하는 개의 사진이 붙어 있는 피켓을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북소리에 맞추어 일사분란하게 치켜들었다. 그 중에는 유명 여배우인 킴 베이싱어 등 몇 명 헐리웃 스타도 참석해 주류 언론도 취재 경쟁을 벌였다. 이번에는 한국의 음식문화가 수난을 당한다.
이런 음식 문화에 대한 수모는 한국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몇 해 전 미국의 CNN은 각 나라별로 독특하고 혐오스런 음식 일곱 개를 선정했다. 캄보디아의 거미 튀김, 태국의 매미 볶음, 피단이라고 일컫는 중국의 삭힌 계란이나 오리 알, 필리핀의 나무좀벌레 타밀록과 개구리 튀김, 인도네시아의 동물 장기로 만든 발효 튀김 칩, 그리고 한국의 개고기다. CNN은 이런 음식을 즐기는 아시안을 마치 미개한 사람이라고 은근히 비하 했지만 따지고 보면 서양 요리 역시 역겨운 것이 많다. 치즈에 구더기를 넣어 숙성시킨 이태리의 카르마르주, 양 머리를 반으로 갈라 그대로 삶아 먹는 노르웨이의 양머리 요리, 프랑스의 달팽이와 개구리 요리, 애벌레 위체니그럽을 생으로 먹는 호주, 에투피리카라는 새의 심장을 날 것으로 먹는 아이슬랜드, 일일이 따지며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돌아보면 각 나라의 음식은 자연 환경이 주는 지역적 특색은 물론 신앙과 도덕성, 삶의 경험과 지혜까지 어우러진 적나라하고 근원적인 삶의 풍습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음식평론가인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말해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그만큼 음식은 개인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의식구조나 삶의 방식과 질을 보여주는 고유문화라는 의미다. 외국인이 보기에 아무리 혐오스런 식품일지라도 그 나라의 환경이나 기호가 그렇다면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남의 기호 식품을 내 비위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혐오식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 지방 특유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개는 다르다. 아무리 각 나라 고유의 음식문화 운운하며 합리화를 시켜도 개를 식용으로 한다는 건 좀 생각해 볼 일이다. 개는 ‘애완동물’의 수준을 넘어 이제 ‘반려’라는 수식어를 가진 동물이다. ‘반려자’란 부부에게만 사용되던 단어다.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짝이라는 뜻이다. 사랑을 나누며 감정을 공유하는 가족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이런 존재를 먹는다는 건 외국인의 시선으로 볼 때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미개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여름 한 철 보양식으로 먹는다고들 하지만 지금은 보양식을 꼭 거기에서 찾아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도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세계가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이웃이다. 대한민국은 한류로 높아진 위상과 한식의 우수성에 이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국제공항 청사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LG와 삼성 TV를 생산하는 멋진 나라다. 이탈리아는 즐겨 먹던 달팽이 요리를 위생상이라는 이유로 주정부에서 금지 시켰다. 우리도 세계인의 눈에 비치는 코리아의 위치를 돌아보는 진지한 자성(自省)이 필요하다. 나의 가치는 내가 결정하고 나 스스로가 존중하며 세워나가는 것 아닌가.
한인타운 복판에 버젓이 걸린 대형 광고나 시위대의 외침이 사랑하는 나의 조국을 향한 세계인의 비난이라는 생각에 모처럼의 기분 좋은 나들이가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