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 스타디움(Dodger Stadium)은 LA의 높은 언덕에 야자수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바둑판 모양의 잔디에 다이아몬드를 심장처럼 가운데 품고 있다.
다저 야구단은 100년이 넘는 오래된 역사와 월드 시리즈 우승 6회에 빛나는 명문구단으로 LA의 자랑이다.
한해 400만 명이 찾는 다저 스타디움은 5만6천 명이 입장할 수 있어 메이저리그 구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1루 측 3층 구석 자리는 아파트 10층 높이지만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바로 지면이 연결되는 특이한 구조로 서부개척지대를 상징하는 말발굽 모양으로 지어졌다.
오늘은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왔다.
오랜만에 넓은 구장을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1990년대 초 박찬호의 등장으로 한인들은 그의 실적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매스컴도 코리안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며 그의 강속구와 더불어 한국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가족과 친구 등 15명이 박찬호 선수가 등판하는 날은 가게 문을 닫고 단체로 야구장을 찾았다.
박 선수의 등번호인 61번이 새겨진 셔츠를 사 입고 열심히 응원하며 스트레스를 LA의 하늘로 날려 보냈다.
한번은 한국의 공영방송에서 우리에게 다가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날 밤 서울의 언니가 전화해서 저녁 9시 뉴스에 작은 오빠의 모습이 방영되었다고 했다.
그 후로도 한 달에 한 번은 두 아들과 야구장을 찾다가 아이들이 상급생이 되며 점점 그 횟수가 줄어 거의 10년 만에 찾았는데 달라진 것들이 많아 섭섭했다.
‘다저의 목소리’라는 별명의 빈 스클리가 그립다.
1950년 브루클린을 시작으로 67년째 다저스의 해설을 맡아온 그가 2016년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를 마지막 중계로 은퇴를 했다.
지하수까지 끌어올릴 듯 강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이제 다저스 야구를 볼 시간입니다(It’s time for Dodger baseball)’라는 전매특허인 시작 코멘트를 들을 수 없다.
다저 구장의 명물 핫도그인 다저 도그(Dodger Dog)는 빵 사이를 길게 비집고 나온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소시지의 맛이 일품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구장에서 직접 수제로 만들었지만 그 후로는 파머 존(Farmer John)이라는 회사에 위탁하여 납품받아 판다고 하는데 오늘 내 손안의 핫도그는 손가락 굵기로 가늘어졌고, 길이도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한입 베어 물면 툭 하고 터져 나오던 특유의 육질과 쫀득쫀득 씹히는 맛이 없다.
땅콩장수의 묘기도 사라졌다.
야구장 구석구석을 돌며 피넛(peanut)을 외치는 판매원은 100만 달러 연봉을 자랑하는 유명 투수들 못지않은 ‘던지기’ 실력을 갖추고 있다.
누군가 ‘땅콩’하고 외치면 그 자리에 서서 손에 움켜쥔 땅콩 봉투를 던지는데 1㎝의 오차도 없이 바로 주문한 관중에게 뚝 떨어진다.
그 정확도에 사람들은 감탄하며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그의 쇼에 답하듯 땅콩을 산 사람이 내민 5달러를 손에서 손으로 건너 건너 전달하며 모두 하나가 됐다.
경기가 지루할 때면 누군가가 준비해 왔는지 어김없이 전달되는 대형의 비치볼은 선수들에게 향하는 관중들이 하는 무언의 항의다.
점수가 나지 않고 그저 그런 경기로 무료할 때 비치볼이 관중석에서 불쑥 올라오고 툭툭 치며 옆으로 뒤로 전달했다.
어디로 튕겨갈지 모르지만 자신의 근처로 비치볼이 오기를 기다리며 여기저기서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우리끼리 잘 논다는 의미다.
테러 발생 방지를 이유로 입구에서 가방을 열어보는 보안검사를 하며 비치볼을 가지고 입장 할 수 없게 제재를 하는데 사고를 방지하고 경기 흐름을 방해받지 않으려 한 조치라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차장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소풍 나온 기분으로 간단한 간식과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2011년 다저스와 개막 경기를 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팬인 스토우가 다저 스타디움 주차장에서 다저스의 팬인 남성 2명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그는 뇌를 다쳐 불구가 되었고, 이후 경찰이 순찰을 돌며 주차장에서 알콜 음료나 음식을 먹지 못하게 단속을 한다.
세태의 변화에 따라 야구장의 풍경도 바뀌었다.
그동안 박찬호를 비롯해 지금의 류현진까지 한국의 여러 야구 선수들이 머물렀다.
1년에 한 번 한국의 날도 있고, 많은 한국의 유명인이 시구도 하며 공연한다.
영원한 것은 없듯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옆에서 아들과 그의 친구들이 ‘렛츠 고 다저스(Let’s go Dodgers)’를 외친다.
양손을 들고 일어나며 파도 물결의 모양을 만드는 응원이 외야 쪽에서 밀려오고 있다.
전에는 내가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제는 아들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다.
나에게도 변화가 있구나. 사라진 명물을 아쉬워 말자. 변화 속에서 새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상징으로 떠오르며 기억되는 것이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