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얻은 기쁨



남에게 장미를 건네준 손에는 꽃향기가 배어 있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나눠주고 베푼 뒤에 느끼는 충만감은 도움을 받을 때보다 몇 배의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보람이 있는 하루였다. 관할 구역의 경찰관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매년 한 번씩 상인협회와 음료수 업체의 도움을 받아, 근처에서 마켓을 운영하는 한인 상인들이 벌이는 행사이다. 갈비를 숯불에 굽는 냄새와 16가지가 넘는 음식이 푸짐해 식욕을 돋우었다.


간간이 서툰 영어로 음식에 대해 설명도 해 주고, 접시에 담아주며 ‘Thank You’라는 인사도 잊지 않고 건넸다. 비번을 빼고 180명 정도 된다는 경찰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몇 차례 훑고 지나가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 되었지만 서로 간에 나눈 감사의 마음이 하나로 만들어주었기에 친근감이 들었다.


점심 한 끼가 그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반가워 해 주었다. 음식에 대한 칭찬과 요리법도 물어오고, 한복의 우아함에 찬사를 곁들여 답례의 인사를 해 올 때는 준비한 우리들도 흐뭇했다.


전쟁을 겪으며 자라난 세대가 아닌데도 경찰하면 민중의 지팡이라는 인식보다는 순사라는 일제의 잔재 때문인지 겁부터 났다. 죄진 일이 없어도 주눅이 들고, 가까이하기에는 어려운 사이라는 생각이 깊었다. 운전 중에 옆이나 뒤에 경찰차가 서 있으면 마음이 두근거려 파란 불이 들어와도 선뜻 출발하지 못했다. ‘괘씸죄에 걸리거나 괜히 신경을 거스르기 싫기 때문이다.

몇 차례 이런 행사를 거듭하면서 만나게 되는 경찰의 모습에서 내가 가졌던 선입견이 조금씩 변했다. 가끔 경찰이 물건을 사러 들어오면, 음료수를 공짜로 주지만 받지 않을 정도로 공과 사를 구분했다. 주민의 신분 조사 중에도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한다.


어떤 사회에도 옥에 티는 있게 마련이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과잉방어로 폭력을 행사한 경찰로 인해 LA에 폭동이 일어나 무고한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마약과 관련되거나 각종 비리를 저지른 경찰들의 문제가 아직도 법정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한 은근히 인종차별을 해서 그들 사이에서도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경찰관도 있다고 한다.


경찰관들 나름의 애로사항이 많다고 한다. 직업 자체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데다 과도한 업무, 조금만 지나쳐도 과잉방어라는 족쇄로 매도되기에 경찰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차츰 줄어드는 추세라 한다. 온갖 흉기가 난무하고, 날로 흉포화하는 범죄의 최전방에 서야 하는 그들의 임무는 날로 무거워지는데 말이다.


밤교대를 준비한다는 자그마한 체격의 여자 경찰이 두꺼운 방탄조끼를 입은 채 자신의 키 만한 장총을 걸쳤다. 무겁지 않으냐는 나의 질문에 한눈을 질끈 감아 윙크로 답하는 당당함에 감탄을 했지만, 곧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의 안녕과 사회 질서구현을 위해 애쓰는 그들에게 감사보다는 조그만 일도 확대해 비판하거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담당 경찰관이 준 명함을 지갑에 넣었다. 그 명함을 사용할 위급 상황이나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곱게 차려입은 한복을 벗으며, 몇 시간의 노동으로 인한 피곤함보다 즐거움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우리의 작은 성의 표시에 기뻐하는 그들을 보며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점심 한 끼에 다른 의미를 얹는 것은 우습지만 감사의 표시에다, 한인들의 단합됨을 보여주고, 한국 음식을 소개했다는 것도 덤으로 얻은 수확이었다.


큰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이렇게 음식과 문화와 마음을 같이 나누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의미가 깊고 보람된 하루였다. 경찰들을 위한 자리였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얻은 것이 더 많았고 행복해 나를 위한 잔치였다는 착각이 들었다.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