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입니다


손님은 왕입니다라는 말이 있다. 당연하다. 손님을 왕처럼 모시는 것이 서비스업, 아니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철칙이다. 정성껏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왕이 존재한다면 신하와 하인이 있어야 한 폭의 그림이 될 것이다. 그러면 업주는 신하가 되고 종업원은 하인이 되어야 하나?


요즘은 누군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일초의 여유도 주지 않고 바로 손님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루에도 2백 명이 넘는 손님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일하면서 각양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코리아타운에서 직장을 잡은 후 큰언니는 사회생활이 초등학교 졸업생 수준인 순 맹탕이라며 내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나는 말이 통하는데 무슨 걱정.”이라며 일축했었다.


내가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민 온 후 히스패닉과 백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면서 언어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 마디 할 때마다 속에서 한 번 되새기고 내뱉던 영어 대신 막힘없는 한국말을 사용하며 일을 하게 되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들이 실실 웃으며 가르쳐 준 말이 나쁜 욕인지도 모르고 따라했던 때가 있었다. 간단한 인사말까지는 알아듣겠는데 한두 마디 길어지면 알아듣지 못해 속으로 진땀을 흘리며 대충 으흠 으흠하며 대꾸했었다. 마치 다 알아들은 것처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황설명을 제대로 못해 간단한 사건도 큰일로 번져 손님을 놓치고 돈도 잃어 버렸다. 그들이 화가 나 언성을 높이며 욕을 해대면 혼자 속으로 위안을 삼았었다. ‘그래 너 잘났어. 나도 네가 하는 욕 못 알아듣지만 너도 마찬가지야하면서 그들이 나를 바보로 생각할지 모른다고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미소로 대처했던 때에는 코리아타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우리말로 편안하게 장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다 코리아타운에 나오니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의 대화도 다 알아들고 손님들과도 편안하게 농담을 주고받으니 정겨웠다. 마늘냄새를 풍길까봐 음식 먹을 때마다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스포츠 중계할 때도 눈치 볼 것 없이 우리 팀을 응원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립던 그 말들로 상처를 많이 받는다. 상대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돼 답답했던 때보다 그 말 뜻, 그 속 안에 숨겨진 의미를 다 알아차리니 그것이 가시가 되어 가슴에 박혔다. 단지 자신보다 나이가 아래로 보인다는 이유로 첫 대면부터 반말을 한다. ‘사장님’ ‘선생님혹은 손님하면서 존칭을 붙이는데 그 대우가 당연하다는 !, ! 하며 명령조로 대하는 손님들이 있다. 정해진 규칙이 있는데 내가 이곳에 얼마나 오래된 고객인데라는 이유로 막무가내식 나름의 변칙규정을 내세우다가 안 통하면 욕에다 삿대질까지 일삼는 그들 앞에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손님들한테 이렇게 되묻고 싶다. ‘입장을 바꾸어 상대가 당신의 아내이거나 딸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직장에서 똑같은 대우를 받고 집에 들어와 하소연을 한다면?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특히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족인데도 심하게 인종차별을 하는 것을 볼 때면 더 화가 난다. 타운에 부쩍 조선족들이 늘었다. 나와 같이 일하는 직원들 중에도 중국에서 온 조선족들이 많다. 그들도 한국 사람이다. 아니 그들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타민족 대하듯 한다. 중국산 물건이 어쩌고 하며 신문에 오르내리면 마치 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가시 돋친 질문들을 한다. 한국식의 표현들에 익숙하지 않아 말뜻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면 놀리기까지 한다. 어느 지방의 사투리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을 쓰이는 단어가 다를 뿐인데 아예 아랫사람 대하듯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고학력자들이 많다. 그래도 이민 초기에는 청소나 페인트 등 육체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 직장을 주로 갖게 된다. 그러면서 외롭고 서러울 때 나오는 넋두리가 내가 그래도 한국에서는으로 시작했었다.

조선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그곳에서는 소위 한 인물 했던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유능한 방송국 국장, 원빈 능가했던 꽃미남 탤런트, 학교 선생님도 있다. 우리의 이민 초기와 비슷한 현상이다. 우리 모두 같은 한국인의 핏줄을 타고났고, 소수민족이며 이민자 가족이다.


우리 모두 손님의 입장일 때도, 반대로 종업원이나 업주일 수도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단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해 주면 강요 안 해도 스스로 존경을 받게 된다.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한다면 그가 가진 지식과 부와 권력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많은 곳에서 으로 군림하실 분들께 부탁한다. ‘왕은 왕 다와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대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지요.’ 그러면 반격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종업원들은 어떻고?’ 하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왕일 수도 하인일 때도 있는 것이 아닌가? 서로 존중하고 챙겨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