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길이 소동


  S권사님이 벌개진 얼굴로 득달같이 다가오셨다. 우리 합창에 맞춰 율동해주실 K집사님 치마 길이가 너무 짧다며 흥분이다. 예배당에서 여자가 다리를 쩍쩍 벌리고 춤을 출거냐고 벌써 본인한테 호통까지 쳤단다. 긴 치마를 입히든지 바지로 갈아입히라 하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찬송가 잘 부르기 대회’가 겨우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옆에서 듣던 사람들이 미니스커트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고 내 편을 들어준다. 돌아보니 여리디 여린 K집사님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다. 저렇게 소나기 맞은 심정으로 어떻게 춤을 출 수 있을까. 마무리 연습을 하고 본당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나도 나서서 지휘를 할 자신이 없어졌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긴장인데, 거기다 부정적인 사람들의 시선을 미리 꽂아주었으니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나설 수도 없다.

  K집사님은 대놓고 내색은 안하지만 얼굴 깊은 곳이 울먹울먹이다. 스커트 밑 두 다리가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른다. 어쩌라고. 권사님은 도대체 지금 어쩌라고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무참히 할키는지 모르겠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여과 없이 뱉어버리는 그 오만방자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이가 들면 나이만큼의 권위가 생긴다고 여기는 걸까. 남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기심이 나이 앞에서는 모두 용납된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용납이 되든 말든 상관없다는 베짱일까.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 앞에서 죄도 아니지만 권력도 아니다. 

 

  화가 났다. “권사님. 저기 좀 보세요. 저 상태로는 무대에 못 나가요. 가서 사과하고 다독거려주세요. 연세 드신 분의 한마디가 얼마나 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지 아세요? “
  고맙게도 S권사님은 풀 죽은 K집사님께 다가갔다. 경건한 신앙생활로 세월을 보낸 분답게 자신의 말실수를 인정했다. 오른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싸더니 소곤소곤. 둘이 마주 보고 웃기까지 한다. 부끄러워 의자 밑에 꼬여있던 다리에도 화색이 돈다. 도무지 자신 없던 마지막 연습도 잘 하고 공연도 잘 마쳤다.  


   “치마 길이가 짧다는 말은 괜찮은데 ‘다리를 쩍쩍 벌리고’ 라는 말이 정말 상처였어. 내가 천한 여자가 된 것 같아서.”  다행히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지만 '다리를 쩍쩍 벌리고'는 우리들 마음속에서 오래오래 머물 것 같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