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남


  그와는 매일 아침 만났다. 길 건너에서 잔디를 정리하거나 쓰레질을 하는 그를 보는 것으로, 또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언제인가부터 일상이 되어버렸고 그가 눈에 안 뜨이는 날에는 웬일일까 궁금해졌다.


   이름도 모르는 그는 항상 연한 초록빛 옷을 입고 있다. 바로 건너편에 법원과 구치소 그리고, 경찰서가 있다. 그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죄수라고 한다. 경찰서 건물의 잔디를 깎고, 나뭇가지를 정리하며 물로 청소를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어느 날인가 그냥 이웃처럼 생각이 들었다.


   처음 손을 흔들어 아침 인사를 할 때는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에 멋쩍었는데 반대편에서 나의 행동에 의외라는 듯, 그러나 무척 반가워하며 함박웃음과 함께 커다란 손짓으로 같이 인사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가끔 그를 보는 것이 나에게 위안이 될 때도 있다. 하루에 15시간씩, 거의 한 장소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지치고 지겹기도 하다. 화창한 날씨에 바다나 공원으로 놀러 나가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 가지고 나가는 흥에 겨운 뒷모습을 보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지다가도 열심히 청소하는 그를 보면 신세 타령이 얼마나 사치인가 하는 반성하게 된다.


   수도 없이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자동차의 물결을 바라보며, 눈에 뜨이는 죄수복을 입은 채 노출된 장소에서 노동을 하는 그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나만 그를 보며 위안으로 삼는 것이 스스로 미안해져서 세상과 반 격리된 죄인이라는 신분인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나도 그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남자가 가게를 들어서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누군가 머릿속으로 기억을 헤집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나 기억이 안 나니? 건너편에서 청소하고 있으면 네가 언제나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잖아.”


  오늘 드디어 구치소 생활 10개월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동안 죄수인 자신에게 좋은 아침을 맞이하게 해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들렀다고 한다. 평상복에 죄수복을 덧입혀 그임을 확인한 후 자유를 되찾은 것을 축하해 주었다. 앞으로 지나는 길에 인사차 꼭 들르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는 가볍게 가게 문을 나섰다. 다시는 저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지켜지기를 바라며 그를 보냈다.


그와의 만남을 손님들과 친한 경찰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모두 걱정했다. 아무에게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지 말라는 둥, 죄인들은 일반인과 어떤 형태로든 접촉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충고, 겁도 없이 어떻게 죄수에게 인사를 할 생각을 했냐며, 또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믿다가 큰일당할 지 모른다는 말까지 들었다.


성악설 성선설을 굳이 들추거나 죄를 미워하지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신파조 말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와 만남은 단지 손을 흔들며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각자의 상황에 따른 기쁨은 누렸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다.


세상을 살아가며 여러 형태의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게 된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때론 증오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다. 그와의 만남은 지나치는 바람에 실려 온 종잇조각이 나뭇가지에 잠깐 걸쳐졌다가 다시 날아가듯 가볍고 쉽게 잊힐 그런 것이었다.


그가 어딘가에서 더 날아다니지 말고 뿌리를 내려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는 주위의 충고를 무시한 채 누군가 건너편에서 세상을 힘겹게 바라본다면, 나 스스로 일상의 답답함에 불평이 솟구치려 한다면 서로에게 위안을 줄 가벼운 만남을 또다시 만들 것이다.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