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한글 사랑, 한글 자랑

“내세울 것 없이 평범한 30년 이민생활 내게 제일 잘한 일이 무엇이냐 물으면아들에게 우리말·글 가르친 것이리라”

2017.09.28

이현숙
재미수필다

 
간판 읽기를 좋아한다.
미국 LA는 다민족이 어울려 살기에 자신들의 모국어로 특색을 살린 간판들이어서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 멕시코를 다녀오며 미국 국경으로 넘어오는데 차량이 밀려 길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지루했다.
무심결에 거리를 내다보다가 한글로 쓰인 간판을 보았다.
‘Corean BBQ- 한국 식당’ 한글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낯선 곳에서 보게 되는 한글 간판은 반가움이 배가되어 무작정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헤어진 피붙이를 만난 느낌이라면 너무 과장일까.
간판 읽기의 시작은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한국 사람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후에 자식들과 대화가 안 통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집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칙을 정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한국의 전래동화를 들려주고 한국어 방송도 같이 보았다.
차 안에서는 동요를 틀어주면서 같이 노래를 불러 자연스레 한국말을 익히도록 했다.
친지들은 공부할 아이와 함께 한국 드라마를 보며 키득댄다며 철없는 엄마라고 야단을 쳤다.

그 덕에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읽고 쓰기가 걱정되었다.
아이가 여덟 살 때, 매주 토요일이면 한인타운에 있는 한글학교에 보냈다.
기역니은을 배우며 조금씩 흥미를 갖는 아들이 내 눈에 기특했다.
어느 날, 한글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지나치는 거리의 한글 간판을 읽어 주었다.
“저기 봐, 식당에 네가 좋아하는 갈비탕이라고 쓰여 있지? 미장원, 분식집, 냉면, 컴퓨터 수리. 어, 이거 재미있네.” 내가 먼저 읽고 따라 하게 했다.
눈으로 보며,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다 보면 더욱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재미가 붙어 아들이 읽으면 다음은 내가, 바통을 주고받았다.
한인타운에서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가서도 한글간판이 보이면 일 초라도 먼저 읽으려 했다.
어떨 때는 아들이 한글 간판 밑에 쓰인 영어를 보고 꾸며 읽는다는 걸 눈치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반만 챙겨도 성공이니 모른 체 넘어가 주었다.

이렇게 시작한 간판 읽기는 놀이가 되었다.
한글 읽기 게임에서 이기면 그날 식사메뉴를 정하기로 했는데 점점 발전했다.
아들은 게임기나 유행하는 운동화를 상품으로 요구했고, 나는 청소기 돌리기, 설거지하기 등 집안일을 시켰다.
대가를 점점 늘려나가니 아이도 지루해하지 않았고 은근히 다음을 기대하기도 했다.
아마 그 뒤에 따라오는 상에 욕심이 났는지도 모르지만 내 목적은 이룬 셈이다.

지금 아들은 서른 살이 되어 독립해서 살고 있다.
아직도 서태지를 좋아하고 한국의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알람시계를 맞추고 새벽이라도 일어나서 본다.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을 확인해 다저스 야구 구경을 간다.
한글로 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엄마 내일 모해? 바지에 구몽 나서 고치야 대. 지금 일헤요. 받침이나 맞춤법이 틀리긴 하지만 나는 잘 읽어내고 뜻을 파악한다.
짧은 문장이라도 받을 때마다 기쁘고 사랑스럽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일상어인데 한글로 문자를 보내고 농담까지 주고받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데 한국인 환자가 오면 통역을 하러 다른 병동까지도 불려간단다.
말이 안 통해 쩔쩔매는 사람을 도와주고 나면 기분이 좋다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
가끔 외국인 남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은 아들과 한글로 문자를 보내거나 대화를 하기에 모자끼리만 통하는 문이 열려 있어 이 또한 다른 즐거움이다.

영어는 머릿속으로 먼저 주어 동사를 나열한 후, 말해야 하기에 항상 3초 늦게 입에서 나온다.
‘어’하는 첫소리만 듣고도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아차리는 모국어는 말의 높낮이만으로도 순간적으로 기분이 전달되기에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며칠 전 아들이 남편의 핸드폰에 하루 한 마디씩 한글을 가르치고 번역하는 프로그램을 입력해 주었다.
이제 비밀 이야기를 못 하겠다는 나의 불평에 남편은 열심히 배워 우리의 대화에 끼어야겠다고 해서 웃었다.

이제 손자가 생기면 남편과 함께 손뼉치며 ‘나비야’ 노래를 부르게 될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로 우리 전래동화를 들려줘야지. 좀 더 크면 아들과 함께했듯이 간판 읽기 놀이를 할 것이다.

우리말, 우리글은 내 할머니가 그랬듯이 또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어지는 내림이다.
그 안에 피가 흐르고 같은 숨을 쉰다.
정이 담겨 있고 역사가 흐른다.
이민 생활 30년, 딱히 내세울 것 없이 평범하게 산다.
누군가 나에게 제일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친 것이라고 답한다.
나 또한 지금처럼 그 이야기를 글로 써나갈 것이다.
고국에서의 살가운 추억도, 외국 생활에서의 애환도 담으려 한다.
우리 말, 우리 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