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미 아가씨와 I Message

 

성민희

 

 딸네 가사도우미가 그만두는 바람에 내 일상이 두 살짜리 손녀에게 붙잡혔다. 여러 곳에 광고를 내고 에이전시에 부탁을 하여 일주일이면 새 사람이 구해질 줄 알았는데 벌써 3주째다. 모든 생활이 차단된 채 딸의 집에 갇혀 기진맥진인데 딸 회사에서 임시로 도우미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당장 도우미를 요청했다.

 

   어제는 허벅지가 내 허리만한 히스패닉 아가씨가 오더니 오늘은 동양인 모습이 살짝 비치는 날씬한 아가씨다. 나를 보자 첫마디가 "나 한국말 할 줄 알아요." 한다. 반가운 마음에 국적을 물어보니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인 할아버지와 스페인계 히스패닉 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엄마는 한국인이란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유럽 사람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다. 외국인과 결혼한 엄마가 딸에게 이만큼 한국말을 가르쳤다니 놀라왔다.

 

  나는 친정 부모님에 형제, 친구까지 온 사방이 한국 사람인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한국말 사용을 고집하며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유치원 때까지는 그럭저럭 먹혀들었지만 초등학생이 되면서 부터는 영어만 하려고 해서 애를 많이 먹었다. 아이들이 영어로 뭘 물으면 아예 못 알아듣는다며 고개를 젓고 내가 말 할 때는 악착같이 한국말을 했다. 몇 년을 씨름을 했나보다. 4학년 쯤 되더니 두 녀석이 포기 했는지 그때부터 집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했다. 이제는 오히려 엄마랑은 영어를 하려니 어색하다고 한다. 두 녀석 모두 한국드라마를 보고 즐기고. 몇 시간씩 대화도 나눈다. 전혀 불편하거나 막힘이 없다.

  그런데 이 아가씨도 한국말을 곧잘 한다. 발음만 조금 어눌할 뿐 자기표현을 하고 내 말도 다 알아듣는다. 오히려 내가 잊어버리고 영어로 말하면 되레 자기가 한국말로 대답한다. 그런데 하는 짓은 정말 맹하다. 뒷마당에서 아기와 물놀이를 할 양으로 플라스틱 물통에 물을 가득 받았다. 나는 아기 옆에 붙어 서서 장난감을 갖다 주고 물도 뿌리며 시중을 드는데 자기는 멀찌감치 수건을 깔고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땡볕에서 한참을 그리 놀다 보니 내가 슬그머니 화가 나려고 했다. "여기에 와서 아기랑 좀 놀아줄래?" 부탁을 해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가 아기 점심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5분도 안 되어서 따라 들어왔다. "아기가 머리를 부딪쳤어요. 겁이 나서 데리고 들어왔어요." 물에 젖은 신발을 신고 마루를 저벅거렸다.

 

 아기 점심으로 민어를 굽고 달걀 국을 끓였다. 밥과 민어구이를 상에 올리고는 국을 푸고 있는데 아기가 의자 위로 올라가 손으로 밥을 집어 입에 넣는 모양이었다. 밥을 잘 먹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국을 들고 테이블에 갔더니 아기 손에 민어가 한 조각 들려있는데 가시가 삐죽삐죽 나와 있다. 내가 질겁하자 가시가 있는데……. 하며 자기도 놀란 시늉을 한다. 앉아있는 그녀와 아기 사이에 서서 내가 가시를 발라주는데도 멀뚱거리며 바라만 볼 뿐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머리가 참 둔한 아가씨네. 또 화가 나려고 했다. "좀 일어나줄래?" 내 말이 딱딱했나 보다. 아가씨의 얼굴이 벌게지며 후다닥 일어났다. "아줌마 땜에 나 지금 기분이 아주 나빠요. 아줌마 왜 나 화나게 만들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순간 큰일 났다 싶었다. 집에 가서 자기 엄마한데 한국 아줌마나빠. 하면 어떡하지. 한국사람 싫어! 하면 어떡하지벌떡 일어나서 미안하다. 아기가 가시를 먹은 것 같아 너무 급해서 그랬어. 정말 미안해. 마음이 좀 풀렸어? 미안해. 열 번도 넘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아가씨는 생긋 웃으며 괜찮다. 이해한다. 했지만 나는 계속 미안하단 말을 했다. 너 감정을 말 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조심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애교도 떨었다.

  이 후로 나는 아기에게 딸기를 주며 아가씨에게도 따로 접시에 예쁘게 담아 바쳤다. 아기 우유를 먹이며 아가씨에게도 오렌지 주스를 올려드렸다. 도우미가 아니라 상전으로 모셨다. 그녀는 자기가 진짜 손님이라도 된 양 아기가 잘 때는 아예 차에서 책을 갖고 들어와 소파에 푹 파묻혀 읽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았다.

 

내 딸은 무슨 말을 하던 속으로 삭이면서 나를 편하게 해 주려고 애쓴다. 한 번도 딸이 내게 소리를 지르거나 삐치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싫은 소리를 툭툭 던지고 헤어진 날에도 딸은 전화를 걸어서 미안하다며 오히려 나를 달래주었다. 한국말을 모두 알아들으니 무심코 던진 내 말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해보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상했을 딸의 감정이 짠하게 다가온다. 내 딸도 저렇게 표현을 했더라면 내가 더 조심했을 것이고 자신은 또 상처를 덜 받았을 것이다. 자녀 교육을 잘 시킨다고 나름대로 애를 쓰며 키웠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가르치지 못한 것 같다.

 

인간관계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 가장 먼저 나오는 항목이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단호하고 냉정하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알아야하는데 그걸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과도 관계를 오래 잇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오늘 맹하다며 무시했던 도우미 아가씨한테서 좋은 인간관계 유지법을 배운다. 관계 유지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이렇게 자기감정을 솔직히 말하며 속상하다는 표현을 할 줄 아는 그녀는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상한 기분은 풀고 나의 배려도 받지 않았는가. 남에게 무엇을 주문하기 전에 먼저 내 감정을 솔직히 전달하는 ‘I Message’는 더 이상의 관계 악화를 막아주는 좋은 방법이란 걸 또 한 번 더 느낀다.

 

도우미 아가씨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퇴근할 때 나를 꼭 안아주고 갔다.

 

 

 

 

 <미주문학> 2017년 가을호 / <퓨전수필> 2017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