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와 피터의 눈 맞춤
뜻하지 않게 생긴 군일이지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헤쳐진 물건을 하나씩 제자리로 옮기며 세 시간 남짓 겪은 감정을 정리해 보았다. 손을 내밀면 잡힐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끼리도 마음은 천 리 밖에 세워 두고 살기 일쑤인데 인간과 동물이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새벽에 가는 비가 오고 난 후,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마음마저 움츠러들었다. 손님도 뜸해서 읽다가만 신문을 펼쳐 들었다. 그때 ‘딩동’ 하는 벨 소리와 함께 무언가 ‘휙’ 바람을 일으키며 가게 안으로 쑥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궁금해 한 바퀴 둘러보니 진열대 구석에 제법 큰 덩어리가 뭉쳐져 있었다. 누런 개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흉측스러운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몸 전체가 흙과 오물로 범벅이었고, 군데군데 털이 빠져나간 맨살에 피가 엉겨 있었다. 입가에는 침을 질질 흘리고, 거품이 묻어 있는 것이 영락없는 미친개였다. 만약 물린다면 하는 상상을 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겁도 없이 다가서려는 남편의 팔을 잡아당겼다.
우리도 문제지만 손님들에게 개가 덤비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소송이 생활화된 사람들이라 가게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손해배상은 물론이고, 심각한 경우 문 닫을 각오를 해야 할 정도이다.
우선 개를 내보내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허기가 진 것 같기에 개밥을 뜯어 징검다리 놓듯, 조금씩 떼어 문 쪽으로 유도를 했다.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나와서 두 번째까지 먹고는 뒷걸음쳐 다른 선반을 헤치고 들어갔다. 작은 통에 물을 담아 내밀었다. 몇 모금 핥더니 그쳤다.
유화책이 안 먹히니 강경책을 쓸 수밖에.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키며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 들은 척도 않기에 긴 막대기로 뚝 건드리니 화들짝 놀라며 건너편 선반으로 뛰어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다른 편 엉덩이를 쳤더니만 이번에는 쌓여 있는 캔을 무너트리고 그 안에 숨어버렸다.
자극을 받아 이리저리 날뛰는 누렁이로 가게 안은 지진이 흔들고 간 자리처럼 쏟아지고 떨어져 엉망이 되었다.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를 누렁이는 멀건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미친개라며 막대기를 휘두르는 남편과 멀찍이 숨어, 몸을 사리며 조심하라고, 외쳐대는 내 모습을 누렁이의 눈에는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만 조급해지고, 속수무책인 채 누렁이와는 풀기 힘든 감정의 줄이 얽혀버렸다. 내치려고 보챌수록 안으로 숨어드는 실랑이에 지쳐 문 앞에 나와 있다가 마침 지나가던 경찰차를 세웠다. 상황설명을 들은 경찰은 가게 문을 닫으라고 했다. 한 시간쯤 되었을까, 경찰이 연락한 ‘동물 보호 관리국’ 직원이 왔다.
조심스레 들어간 두 사람을 보기 위해 문밖의 우리 부부와 두 명의 경찰은 까치발을 하고 유리창에 얼굴을 들이대었다. 발자국을 떼어놓을 때마다 구경하는 우리가 더 긴장되었다.
“허니! 허니! 어디 있니?”
그들은 편안한 음성으로 누렁이를 불렀다. 무슨 이야기인지 나도 못 알아듣는데, 더구나 미친개가 이해할까마는 개의치 않는지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분위기를 조성한 그들은 휴지들 틈에 들어 있는 개를 발견하고 그 앞에 가서 앉았다. ‘피터’라는 명찰을 단 사람이 누렁이와 눈을 맞추었다. 마치 화가 나 토라진 애인을 달래듯, 아니면 떼쓰는 막냇동생을 어르듯, 부드러운 눈길을 계속 보냈다.
“허니, 왜 그래. 이리 와 불쌍한 것… 내가 도와줄게.”
누렁이는 피터의 마음을 받아들였는지 “우” 하는 단모음의 울음소리를 내며 맞장구를 쳤다. 뜸이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레 손을 뻗어 개의 머리와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잔뜩 움츠렸던 누렁이가 그에게 덤빌 것 같아 밖에서 구경하던 우리는 ‘헉’ 하고 비명을 동시에 질렀다.
그런데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던 순한 아기처럼 머리를 들이밀고는 끙끙거리는 것이었다. 둘의 눈빛 사이로 정의 끈이 걸쳐지며 모락모락 따스함을 주고받는 듯했다. 누렁이가 안정된 모습을 보이자 다른 사람은 그 옆으로가 개목에 줄을 걸었다. 잠시 거부반응을 보이며 버티더니 이내 포기한 듯 얌전해졌다. 두 사람이 개를 사이에 두고 걸어 나오자 우리는 그 의미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박수를 쳤다.
그들은 계속 다정한 말로 속삭이며 오물로 떡이진 개의 몸을 쓰다듬고 뺨을 비벼 대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누렁이의 상태가 느껴지지 않는가 보다. 결국 동물보호국 차량의 칸막이 방에 실려 떠나갔다.
한나절의 평온함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은 마무리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두 시간을 씨름하던 우리와는 달리 20분도 안 돼 해결해낸 그들의 노련함에 감탄을 하며 그뿐 아니라 뒤에 보이지 않는 다른 무엇이 있음도 느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당황하고 놀라서 일단 거부의 표시를 했었다. 그리고 미친개에 대한 선입견으로 무조건 내쫓으려고만 했었다. 그것이 개가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공포감을 느껴 경계하게 되고, 적개심을 갖게 했나보다.
그들은 처음부터 개의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로의 마음을 나타냈을 때, 이 사람들이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누렁이에게 갖게 해주었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이렇게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쓰레질하면서 내내 피터와 누렁이의 눈 맞춤이 잊히지 않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한다. 창문을 열면 바람은 자연스레 스며들게 마련이듯, 먼저 마음의 문을 열면 상대는 호기심에라도 들여다보다가 슬며시 그도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