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Yuki와 감나무

 

유키 네 집 앞마당이 시끌벅적하다. 감나무 가지들이 무겁게 매달린 열매 때문인지 우리의 분주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파르르 진저리를 친다. Joe와 두 아들을 앞세워 유키 네 감나무의 감을 따러 왔다. 감나무는 위풍당당하게 옆의 야자수 나무와 오렌지 나무를 누른 채 서 있다. 열매가 열리면서 가지가 점점 처지더니 이제는 아래 땅바닥으로 누우려는 듯 기진맥진이다.

어제 인사차 들렸더니 감을 따야 하는데 노인 둘이 어찌해야 할지, 아들네 가족이 여행을 가서 다음 주에 온다는 것이다. 나는 내일 당장 아들들 데리고 와서 익은 것만이라도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유키는 현관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다음으로 쳐낼 가지를 가리키며 선두지휘를 한다. 큰아들Andy는 사다리 위에서 그녀의 지시를 따른다. 작은 아들Kenny는 쳐 낸 가지를 잘라 쓰레기통에 넣는다. Joe는 큰 아들을 위해 사다리를 잡아 주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잔디에 앉아 감을 상자에 담는데 한 폭의 행복한 그림으로 마음 가득 달콤함이 채워진다.

감나무는 일곱 가지 덕이 있는 나무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수명이 길고 녹음이 짙다. 아름다운 단풍과 맛있는 열매가 열린다. 잎은 차로 다려 마시면 배탈과 숙취에 좋고 어혈을 삭혀준단다. 버릴 것 하나 없이 유용한 감나무다.

 

유키Yuki 엄마와 칼로스 Carls아빠. 남편 옛 애인의 부모님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들려서 말동무가 되어 드리다 보니 자연스레 호칭이 정리되었다. 일본인 3세인 유키는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인자한 교장 할머니 같은 인상을 풍긴다. 남편은 93세로, 자동차 정비업소를 운영했었는데 혼자 힘으로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문득 돌아보니 유키가 하늘에 피어오르는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얼른 눈을 거두고 수건으로 감을 닦는다. 내가 유키의 나이쯤 되면 어떤 모습일까 그려본다. 유키는 8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동적이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교회에서는 여성 성경공부 리더이다. 그녀 자신도 지팡이에 의지해 걷지만, 양로원 봉사활동도 한다. 손에서 책을 떼어 놓지 않고, 젊은이들과 페이스 북으로 대화를 나눈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어 새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쿠폰도 열심히 활용하고, 작은 노트에 그날 할 일을 순서대로 정리하며 시간을 흘러버리지 않는다. 요리책을 보며 색다른 음식에 도전해 주위 사람들을 불러 맛보게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이기도 하다.

감나무와 유키는 서로 닮았다. 주위를 채워주고 나누는 넉넉한 마음씨가 그렇다. 나는 어떤가. 나에게 주어진 삶은 어느 정도 영글었을까? 열매가 열리기는 한 것일까? 두 손에 쥐어진 공기 정도의 무게감만이 느껴진다. 감나무처럼, 아니 유키처럼 넉넉함으로 나누고 챙길만한 여유를 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밀려오는 허무함과 자괴감을 갱년기 우울증으로 포장해 옆구리에 차고 다녔다. 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순간 중심을 잃으며 잔디에 털썩 주저앉았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아들들을 본다. 유키 할머니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넉넉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감나무처럼 자신의 자질이 무엇인지 찾아 발전시키고, 사회인으로 한 몫을 당당히 맡아냈으면 좋겠다. 자신의 길을 올바르게 걸어가 남에게 폐가 되거나 피해를 주지 않은 것도 넓게 보면 도움을 주는 삶이 아닐까 한다. 나는 뚜렷하게 손안에 잡히는 것이 없을지라도 아들들이 그런 엄마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는 모습을 보는 것도 또 다른 행복이리라. 대리만족이면 어쩌랴. 오직 내세울 나의 열매들인 것을.

감을 담은 상자 안에 아들들을 향한 바람도 같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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