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시터Father-sitter
오지랖이 넓은 탓에 아버지가 한 분 더 생겼다. 올해로 92세가 되시는데 직접 운전을 해 경마장과 카지노에 가고, 자신의 옷은 스스로 세탁하는 등 깔끔하신 분이다. 친구인 Joe의 아버지인데 그분과 놀아 드리는 것이 이제는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Joe는 그의 아버지가 얼마 전 발의 통증을 호소해 병원에 모시고 갔단다. 혈액순환이 안 되어 발가락 부분에서 무릎까지 염증이 올라왔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Joe는 걱정이 태산이다. 오후에는 자신이 퇴근하고 돌보면 되는데 아침 시간이 문제란다. 간단한 식사와 정확한 시간에 약을 챙겨 드리면 되는데 주위에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딱해 마침 오전에 시간이 되니 한 달 정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Joe와 함께 정성을 들였지만 이미 시작된 염증으로 결국 오른쪽 다리를 무릎 위까지 절단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약속한 기한이 지났다고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그분은 퇴원해서 집에 있는데 깐깐하던 성격은 다리와 함께 어디로 보내버리고, 도움의 손길을 애처롭게 기다리며 보채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스스로 몸을 가누질 못한 채 고통스럽게 침대에 누워 있는 그분을 보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진다.
친정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서 몇 년을 식물인간처럼 누워 지내셨다. 일한다는 핑계로, 아이들 키우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병간호는 전적으로 엄마에게 미루고 무관심했다. 집안에 풍기는 병자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비위를 상하게 했다. 다른 무엇보다 당당하고 근엄했던 모습 대신 초라하게 변해버린 아버지를 인정하기 싫어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들려도 방에 들어가 잠깐 눈도장만 찍고, 엄마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다 오고는 했다.
말은 못 해도 의식은 또렷하셨던 아버지는 막내딸에게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모든 의사를 눈으로 표현하시던 아버지. 막내딸을 보면 반가움에 눈을 크게 뜨고 껌뻑이셨다. 가까이 잡아끌던 그 눈짓을 모른 척 외면하고 바로 돌아섰던 나의 무정함이 후회된다. 손이라도 따뜻이 잡아드리고, 얼굴이라도 한번 닦아 드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목젖을 오르내리면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이제 다른 아버지가 내 앞에 누워있다. 기저귀를 갈아 채울 때도 냄새가 역겹지 않고, 일으켜 앉힐 때도 혹시 놓쳐 넘어뜨릴까 봐 꼭 끌어안는다. 남은 한쪽 다리에도 전조 증상이 보인다기에 오일을 발라 열심히 주무르고 운동을 시킨다.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 베이비파우더와 로션을 발라준다. 처음에는 멋쩍고 부끄러워하다가 그분도 당연한 일인 양 받아들이신다. 친척들이 안부 전화를 해도 양딸이 잘 돌봐주니 걱정 없다고 한다. 잘려나갔지만 기억 속에 새겨진 진통이 계속 찾아와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아프다고 만져 달란다. 없어진 지 언제인데 아직도 아버지를 찾아와 괴롭히냐면서 무릎이 있던 부근을 철썩철썩 때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는 내 모습이 웃기는지 그분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전문 간병인이 와서 돌봐 드리는데,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정이 들어서인지 눈에 안 띄면 소리쳐 부른다. “숙! 어디 있니?” 일을 가려 가방을 손에 들면 시계를 쳐다보며 시큰둥해 진다. 인사를 하고, 문고리에 손을 대면 “나 오늘 면도 안 해서 얼굴이 까슬까슬 해.” “나 배고파.” 하며 요구를 한다. 간병인이 해 준다고 해도 나만 쳐다본다.
“막내야! 그리웠는데 잠깐만 더 있다 가지.”하며 뒤통수를 애처롭게 잡아끌던 물기 섞인 아버지의 눈길이 그분의 것과 겹쳐지기에 마음이 약해져 번번이 발길을 돌리게 된다.
생활의 변화가 없기에 낮인지 밤인지 구별을 못하는 그분에게 쉬지 않고 장난과 시비를 건다. 토닥토닥 다투는 모습에 간병인은 여러 환자를 돌보았지만, 우리 같은 부녀(?)는 처음 본다며 즐거워한다. 빨리 기력을 회복해 휠체어를 사용해야 좋아하는 카지노에 모시고 간다는 조건을 내걸며 운동을 시킨다. 적당한 공갈과 협박으로 식사량을 늘리기도 한다. 이렇게 아버지 시터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기쁨조가 되어 드린다.
나만의 시간을 잃어버렸지만, 누군가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생각에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