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냐타Pinata의 슬픈 운명
색색의 사탕이 소낙비 되어 쏟아져 내린다. 달콤한 유혹에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바구니에 주워 담느라 바쁘다. 이리저리 넘어지고 부딪치며 신바람이 났다. 공중에 매달린 인형은 너덜너덜해진 채, 피냐타로 태어난 자신의 슬픈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피냐타 놀이를 처음 대한 것은 직장의 가족 야유회에서였다. 10월의 산들바람과 파릇한 잔디 위에 발야구와 농구로 땀범벅이 된 어른들, 바비큐 그릴에서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허기를 불러온다. 한쪽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미끄럼과 그네를 타며 놀고 있다. 나무 그늘에는 전자오르간이 신나게 곡을 연주한다. 테이블에는 음식들이 푸짐하게 담긴 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여유 있고 즐거운 잔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양쪽 나무 사이에 긴 줄로 연결한 노란 피카추-Pikachu 포켓몬스터라는 만화영화와 게임 시리즈에 나오는 새앙토끼Pica와 햄스터를 모티브로 한 귀여운 쥐- 모양의 피냐타를 걸었다. 20여 명의 아이가 줄을 서서 눈을 가린 채 종이 막대기로 그것을 두드린다. 어른들은 둘러서서 “왼쪽, 오른쪽, 뒤로 돌아, 좀 더 앞에!” 방향을 제시해 주며 응원을 했다. 한 바퀴를 돌았는데도 끄떡없자 남자직원이 차로 가더니 나무로 만든 야구방망이를 가져와 자기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잘못 휘둘러 누군가 맞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되어 관심을 두고 보게 되었다. 귀여운 캐릭터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그가 이제는 반대로 공격의 대상이 되어 얻어맞고 있다. 볼에 있는 주머니로 전기를 방출해 10만 볼트의 번개로 악당들을 공격하던 영웅이 아니었던가. 퍽! 아이가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퍽! 배를 강타당해 몸체가 두 동강이 나며, 울컥 모든 것을 토해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 저럴까. 아픔과 슬픔이 그대로 전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충격이었다.
피냐타는 멕시코의 전통놀이다. 원래는 6개의 꼭지가 달린 별 모양의 틀에 번쩍이는 색종이를 붙이고 그 안에 사탕이나 동전을 채워 넣는다. 각 꼭지는 악을 상징한다. 그들은 화려하게 눈속임을 한 채 인간들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기 위해 유혹한다. 그것을 물리쳐내면 하늘의 상을 받는다는 종교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취지는 없어지고 상술이 보태어지면서 단순한 놀이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유행하는 영화의 캐릭터 모양이 주를 이루는데, 마이클잭슨이 죽은 후 그의 모습을 한 피냐타가 상점에 걸린 것을 보고 ‘어쩌면,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에 쓴웃음을 흘렸다.
때려야 분이 풀리고, 부셔야 희열을 느끼는 세상이다.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살아남는다. 메마르고 각박한 삶, 어쩌면 분풀이의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성악설이나 성선설을 들먹일 것까지는 없겠지만 선과 악은 손바닥처럼 양면이 공존하는 인간의 본성이리라. 어떤 일면이 먼저 반응을 보이는가에 따라, 시대의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흥부가 동정을 받던 시대는 가고, 놀부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착하다는 말 뒤에는 칭찬이 아니라 바보라는 놀림이 숨겨져 있어 달갑게 들리지 않는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면 정직함을 대변했지만, 이제는 돈과 권력 그리고 능력을 겸비해 법 위에 군림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어느 잡지에서 폭력과 공격성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보고서를 읽은 기억이 난다. 건강한 공격성 안에는 갈등이나 위기상황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열정적 에너지가 있단다. 외부에서 오는 정보와 자극을 잘 소화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만큼의 공격성이 필요하단다. 적절하게 화를 낼 줄도 알아야 정신 건강에 좋고,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힘이 되어준다고 한다.
좋은 공격성으로 한 단계 높이려면 컨트롤이 필요할 것이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아이들에게 피냐타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그 유래를 간단히 설명해 주면 어떨까. 진정한 취지를 알려주면 단순히 때리는 일차적인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 보상으로 얻는 간식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점점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노출되어 당연하다는 듯 길드는 아이들이 걱정된다.
여기저기 찢겨 나뒹구는 색지를 주우며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가 앞에 와서 멈추었다. 6살짜리 케일리였다. 고사리손에 가득 담긴 사탕을 건네주고는 친구들에게로 뛰어간다.
나만의 지나친 생각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