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의 장례식

웨딩드레스를 입은 허미가 누워서 손님들을 맞았다. 살포시 펼쳐진 면사포에 앙증맞은 왕관이 꽂혀 있다. 흰 장갑 위로 행운을 불러온다는 하늘색의 인디언 돌이 박힌 반지가 끼워져 있다. 붉게 칠한 볼연지와 립스틱이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 위에 얹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허미는 올해 73세이다. 남편의 누나다. 한인 타운에서 한 시간거리에 있는 벨 훌라워 시의 모빌 홈에 혼자 산다. 고혈압, 당뇨에 신장이 나빠 일주일에 두 번씩 투석을 받고 있었다. 다섯 달 전에 투석을 하기 위해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몸의 왼쪽이 마비되어 재활병원으로 옮겼다가 별 차도가 없어 양로병원으로 보내졌다.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두 번째로 풍을 맞으면서 전신에 마비가 왔다. 회생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고 가족들이 합의하에 투석을 멈추자 3일 만에 근근이 붙잡고 있던 생명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녀의 장례식은 아침 9시에 로스엔젤레스의 칼버리Calivary 천주교 공원묘지 안에 있는 접견실에서 시작되었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해 생전에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이 소원이었던 허미. 그녀의 딸은 큰 사이즈를 찾느라 열 군데를 넘게 돌아다니며 어렵게 구했단다.

관 주위에는 그녀의 삶이 보이는 사진들이 판넬 위에 펼쳐져 있다. 네 자매가 한껏 멋을 부린 채 카니발을 배경으로 찍은 흑백사진 안에 그녀는 아름다운 아가씨로 남겨져 있다. 갓 때어난 딸을 어설프게 안은 채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어린 손녀와 손자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에는 그녀의 큰 엉덩이에 반쯤 가려진 아이들의 어깨가 웃음을 불러왔다. 입을 쩍 벌리고 잠의 삼매경에 빠진 모습과 어느 관광지에서인지 카우보이 의상을 빌려 입고 어정쩡한 자세로 장총을 어깨에 둘러맨 포즈가 재미있다.

미국인들의 장례식의 분위기가 그렇듯 간단한 티파티에 온 것 같다. 한쪽에는 커피와 음료수, 도넛, 빵, 과자 등 간식들이 준비되어 있다. 안락한 소파에 앉거나 서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음식을 먹었다. 간간이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은 슬픔과 반가움의 포옹을 나누었다. 그녀와 얽힌 이야기를 나누다 아쉬움에 다시 허미를 들여다보고, 삶에 치어 소원했던 것이 미안해 또 뒤돌아본다. 자유스럽고 산만한 분위기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안타까움과 ‘좀 더’라는 회한이 흐른다.

 

그녀를 안지 2년이 되었지만 만난 것은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정이 들었거나 딱히 나눌 이야기는 없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마치 나도 그녀와 돈독했던 사이 같이 느껴졌다. 어떤 이별도 아름다울 수 없지만 장례식 내내 그녀를 보내는 친지들의 사랑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죽은 이를 죽었다고 보는 것은 어질지 못하고, 죽은 이를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말이 있다. 허미도 지금 어느 한 구석 자리에 앉아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온 관심을 집중하며 좋았던 즐거웠던 일들을 나누는 이 시간을 즐기고 있지는 않을까. 한 순간에 무너짐으로 자신의 삶을 다독이고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음을 아쉬워 할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살아있음에 감사하지 못한 것을, 곁에 있을 때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서운한 것만 앞세웠던 것을 후회하지 않을 까. 그동안 못 다한, 미처 나누지 못한 사랑을 지금 사이사이 오가며 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주검 앞에서는 마음이 경건해지고, 살아온 시간을 자연스레 돌아보게 된다. 한 뼘 누울 자리와 입고 갈 한 벌의 옷이면 족한 것을. 욕심 부리며 아등바등 허겁지겁 사는 모습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남의 눈과 기준을 척도 삼아 높은 곳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내가 떠난 후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울어 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를 위해 진정으로 나눈 것이나 베푼 것이 있을까. 삶의 의미와 인생이 무엇인지, 어떤 모양새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 생각해 본다.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깨닫게 되고 또 언젠가 맞이해야 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스멀스멀 감싼다.

고별식 미사를 드리러 옆의 성당으로 옮겨야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라는 상주의 말에 소파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만졌다. 곱게 단장한 신부 허미, 이제 길을 가다 상점 유리에 비치는 웨딩드레스를 보면 한동안 그녀가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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